Fathers’ Notice

Fathers’ Note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아침 등원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침 등원은 여러모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많은 시간이다. 첫째 아침 셔틀 시간에 맞춰 둘째까지 준비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등원이 하염없이 늦어져 내 오전 일과에까지 영향을 준다. (자세한 육아 일과는 지난 레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밥을 다 먹은 첫째에게 이제 옷을 입으라고 하니 예상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빠 시끄러워요”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나 싶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이서야 뭐라고?”

“시끄럽다고요.”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시끄럽다고요.”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39살 차이 나는 아빠한테 5살 먹은 아이가 할 소리가 맞나 싶었다. 누군가가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말을 처음 생각해낸 건 아마도 아이한테 ‘시끄러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아닐까? 단전에서 시작된 화가 목구멍을 지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게 지금 어디 아빠한테 그런 말을 써!”

“버르장머리없이 이게 어디서..!”

“너 당장 옷방으로 가서 옷 갈아입어!”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가 잘못할 수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게 뭣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마음속으로나마 그런 이야기를 던졌던 분들에게 백배사죄하는 마음이다.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도 온전히 육아를 해본적이 없는 사람일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놀란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아이를 옷방으로 데려갔다. 입고 있던 내복을 거칠고 성난 손길로 벗기고 당장 옷을 갈아입으라며 닥달했다. 우는 아이를 앉혔다가 일으켰다가 하면서 바지를 입히고 양말을 입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옷 입히기를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등원시켜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셔틀 버스는 진작에 놓쳤다. 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이를 향한 협박을 토해냈다. 넌 이제 아빠랑 못놀거다, 다시는 너 데리러 안갈테니 셔틀 타고 와라, 그런식으로 말하면 유치원도 못가고 친구들도 못본다 등등 아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시끄러워요라고 하지 않을게요’’라고 대답하길 기대하며 유치한 협박을 늘어놓았다. 또 한번 예상 못한 아이의 답변이 돌아왔다.

“네”

평온했다. 아빠의 협박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듯 또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라는 듯 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치졸한 협박을 늘어놓았던 지난 10분 동안의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내려서는 건물로 들어가는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안아주고 뽀뽀도 하고 따뜻한 인사를 나눴을테지만 오늘은 영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냉랭하게 돌아서는 나 자신이 참 별로라고 느껴지면서도 아이에게 따뜻하게 인사해줄 넓은 아량이 차마 생기지 않았다.

등원시켜 놓고도 이 상황을 어디엔가 풀어내고 싶었다. 적절한 공감을 얻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복잡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욕심을 부려본다. 아이를 원망하고 나를 전적으로 응원해준다기 보다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주고 나의 마음에 공감해주면서도 적당히 드라이하게 지지해주는 마음을 얻고 싶은 것이었다. 평소 잘하던 SNS에 올리자니 너무 성급한 행동 같았다. 맥락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옹졸함을 보여줄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 보자.. 보통 집안의 모든 이슈는 아내와 나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자니 한창 출근해서 정신없을 사람에게 하지 않아도 될 고민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여기도 패스. 결국 찾은 건 썬데이 파더스 클럽 멤버들이 모여 있는 방이었다.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며, 적당한 거리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몇년째 함께 레터를 써오고 있는 이들. 이들이라면 내가 딱 원하던 감도의 공감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오전에 휘몰아쳤던 일들과 아직 가라앉지 않은 마음을 담아 짧지만 강렬하게 손가락을 두들겨 ‘진짜 아침마다 등원 시키는거 너무 힘드네요 하…’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둘 답변이 올라온다. ㅋㅋㅋ가 섞인 뭐 꼭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지나가는 거 라는 체념한 듯한 반농담 답변부터 말버릇을 바꿔놔야겠다는 강한 공감, 부모가 하는 모습을 보고 닮기도 한다던데요 라는 조심스러운 멘트까지. 멤버들의 답장에 아이한테 시끄럽다고 한적이 없다는 구차한 변명을 남기고 ㅋㅋㅋ 섞인 반농담에는 약간 발끈하기도 하고, 말버릇을 바꿔놔야겠다는 공감에는 우리 애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마음에 고슴도치 아빠가 할 법한 대답들을 남겼다. 다양한 답변과 공감을 얻다보니 성난 파도같던 마음이 조금씩 잔잔해지는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렇게까지 크게 화낼 일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 하는 자각이 들었다.

가만히 오늘 아침 일을 복기해봤다. 아이는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시끄럽다고 말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화를 낸걸까? ‘아빠 시끄러워요’라고 말하던 아이의 표정을 기억해냈다. 너무나도 임팩트 있던 그때 아이의 표정. 시끄러워요라고 하는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차분해 보였고 순수하고 순박했다. 아이는 말 그대로 시끄러웠던 거다. 톤을 높이거나 화난 말투로 말한게 아니었던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한 일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아빠의 말이 듣고 싶지 않았던거다. 의도치 않게 적절치 못했던 5살 아이의 언어 선택에 44살 먹은 아빠가 열이 받았던거다. 흔히들 화를 내는건 2차 감정이라고 한다. 나의 1차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건데 당혹스러움과 걱정이 함께 왔던 것 같다. 버릇없이 굴고 나를 무시한다는 감정에 더해 얘가 이런 표현을 다른 누군가한테도 쓰고 다니는건 아닐까 하는 당혹감과 걱정이 함께 했다.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한데 엉켜 화내고 소리를 지르는, 그야말로 아이 입장에서 아빠의 1차 감정은 전혀 느낄 수도 없는 미성숙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만거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다보니 이번엔 단전에서 화가 아닌 부끄러움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미성숙했던 내 모습이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부끄러워진 것이다. 내 안의 화를 잘 정리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쏟아부은 스스로가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혹여나 자신이 한 말 실수 한번으로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는 건 아닐지. 어릴 적 조금만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는데 정작 나는 그 모습을 내 아이에게 재연하고 있던건 아니었는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빠가 데리러 왔다는 소리에 한달음에 달려나온 아이는 나를 보고는 물었다. 

“왜 데리러 왔어요?”

다시는 데리러 오지 않겠다던 아침에 아빠가 쏟아부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거다. 아빠가 할 말이 있다고, 뒷좌석 카시트에 오르기 전에 잠깐 조수석에 타보라고 했다. 아이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이서야 오늘 아침에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아빠가 화가 많이 나도 소리를 지르면 안됐는데 미안해. 앞으로는 소리지르고 화내지 않을게.”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딱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아보였다. 그저 아빠의 사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어서 아이에게 시끄럽다는건 어른들한테 쓰는 게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아이도 알겠다고 했다. 아이를 태우고 집에 가는 길, 그런 표현을 어디서 들었는지 물었다. 꿈 속에서 여우가 어른 여우한테 시끄럽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 여우는 화내지 않았다고.

정말 꿈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건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건지, 그도 아니면 자기가 여우가 되어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래 맞다. 5살 아이가 시끄럽다고 이야기 한다고 해서 화내는 건 좋은 어른이 아니지. 뭐가 잘못됐는지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잘 타이르는게 좋은 어른이지. 아빠가 네 덕에 그래도 조금씩은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미안해. 앞으로도 잘해보자. 

아빠가 잘할게.

Fathers’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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