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내가 복직한지 11영업일이 지났다. ‘영업일’이라는 표현은 회사 다닐 때 주로 쓰던 표현이다. 흔히 말하는 ‘빨간날’이 아닌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날을 의미한다. 회사를 다니지는 않지만 아내가 복직한 이후 ‘영업일’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대신 그 앞에 두글자가 더 붙는다. ‘육아영업일’. 아내가 출근하는 날은 나의 ‘육아영업일’인 셈이다. 아내가 복직을 하고 나서는 두 아이의 등하원과 식사 그 밖에 집안일을 모두 맡아서 하는 중이다. 

며칠간 독박? 독점? 육아를 해본 소회를 밝히자면.. 이제야 진짜 육아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다. 첫째 때는 처가 바로 옆으로 이사를 가서 장인장모님께서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봐주셨다. 둘째가 나오고 나서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맡아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롯이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육아에 정신 못차리고 있는 나의 하루를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봤다.

- 오전 7시 20분

“여보.여보.”

“어어..”

“이서 옷은 갈아입혔어. 나 갈게”

“어어 잘 다녀와”

아내의 출근길 인사에 잠에서 깬다. 아이들은 아내의 기상시간과 비슷하게 일어난다. 얼마 전 복직한 아내는 출근 전에 첫째 유치원 가방과 둘째 유치원 가방을 싸고 첫째 옷을 갈아입혀둔다. 그리고 나를 깨우고 집을 나선다. 이제부터 아이 둘은 내 몫이다.

- 오전 7시 30분

서둘러 아이 둘의 아침 식사를 챙긴다. 아침은 간소하게 차린다. 5살 이서의 아침은 주로 삶은 계란 흰자(얘는 꼭 노른자는 빼놓고 먹는다), 사과나 바나나 또는 블루베리로 준비한다. 탄수화물이 부족해서 빵을 챙겨주곤 하는데 꼭 한두입 먹고는 말아서 주지 않는다. 정말 급할 때는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서 준 적도 있는데 건강에 그닥 좋을 것 같진 않아 가급적이면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둘째 이솔이의 밥을 챙긴다. 분유 200미리를 먹이고 물 70미리에 오트밀 한스쿱을 떠서 전자렌지에 돌린다. 총 2분이지만 1분, 30초, 30초 이렇게 세번에 나눠서 돌린다. 한번에 2분을 돌리면 오트밀이 그릇 밖으로 넘쳐버린다는 아내의 조언 때문이다. 거기에 바나나 반개 또는 계란을 으깨어 섞여 먹인다. 

아파트 단지 앞으로 오는 첫째 유치원 셔틀 시간은 8시 42분. 늦지 않고 타려면 8시 30분에는 나서야 한다. 작은 아파트 단지이기에 금방 갈 수도 있지만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며칠 전 시작한 아파트 엘레베이터 교체 공사로 인해 엘레베이터 2대 중 1대만 이용가능하다. 한번은 엘레베이터를 2번이나 그냥 보내느라 셔틀을 놓치기도 했다. 

또 다른 변수는 둘째의 배변이다. 이 아이의 배변 루틴은 참 일관된 편이어서 보통 아침에 큰 일을 치른다. 그런데 어떤 날은 집을 나서려는 마지막 순간에 변을 보기도 한다. 

‘끄으응….’

준비를 다 마치고 나가려는데 둘째가 힘을 주면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 옷을 벗겨서 기저귀를 벗기고 화장실로 달려가 엉덩이를 씻기고 다시 기저귀를 입히고 옷을 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빠르게 수행해낸다. 하지만 둘째의 배변 때문에 첫째 셔틀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변수는 첫째의 협조다. 말그대로 협조. 아이가 해야 할 몇 가지 미션들, 그러니까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신발을 신고 하는 모든 개별 동작들이 아이의 자발적 협조가 없이는 하기 힘든 일들이다. 그런데 그 협조가 어렵다. 기다려주기도 하고 온화하게도 이야기하고 읍소(?)도 해보지만 아이의 그날 그날의 컨디션과 바이오리듬에 따라 협조 여부가 결정된다. 

양치 하라고 칫솔에 치약을 짜주면 눕고 싶다고 하고, 밥을 먹으라고 하면 제 방에서 레고를 들고 나와서는 조립이 잘 안된다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신발을 신으라고 하면 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잠바를 입으라고 하면 다른 옷을 입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큰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듣는건 아니기에 그저 아이가 잘 도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 오전 8시 32분

첫째 손을 잡고 둘째는 아기띠 또는 유아차에 넣고 단지 정문으로 향한다. 조금 여유가 있는 날은 지지고 볶는 등원 길도 다 추억이려니.. 하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제 멋대로 포즈를 취하는 첫째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이의 재잘대는 수다를 들어주다 보면 담장 너머로 유치원 버스가 다가오는게 보인다. 

“이서야 버스왔다!”

선생님과 함께 버스에 탄 첫째를 보며 손키스를 날리고 손을 흔든다. 운이 좋은 날에는 아이도 나에게 화답 차원에서 손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나를 본체 만체 하니 나를 쳐다봐주기라도 하면 고마울 따름이다. 첫째를 보냈으니 이제는 둘째를 등원시킬 차례다. 둘째와 함께 우리 동 앞에 세워진 차로 돌아온다. 아이를 뒷좌석 카시트에 앉히고 어린이집 가방을 차에 싣는다. 둘째 어린이집은 차로 약 6분 거리에 있다. 집 근처에도 어린이집이 있지만 이제 막 돌이 된 둘째가 가야할 0세반이 있는 어린이 집을 찾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0세반 등원을 예약해두었는데 갑자기 우선순위가 바뀌어 다른 아이가 다녀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한 뒤 급하게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았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1층으로 올라간다. 내 손을 떠나 어린이집 선생님 품에 안길 때면 아이는 꼭 선생님 품에 머리를 삐딱하게 기대고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등원을 시작한지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새 선생님의 품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아이의 편안한 표정을 보니 등원을 마친 내 기분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아이들이 잘 지내겠구나’

- 오전 9시

집에 돌아오면 어지러진 집을 치우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아침 식사를 치운다. 그리고 나도 가볍게 (때론 무겁게)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잠시 소파에 널부러진다. 생각 같아서는 책도 읽고 해야할 일을 바로 해야겠지만 1시간 30분의 전쟁같은 아침 등원을 마치면 진이 빠진다. 급한 일이 없으면 조금 더 쉬기도 하고 체력이 받쳐주는 날에는 간밤에 해둔 빨래를 개기도 한다.

- 오후 4시 40분

이제 하원시간이다. 외부에 나갔다가도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하던 일이 있어도 더 늦어서는 안된다. 둘째를 먼저 하원시킨다. 둘째를 하원시켜와야 첫째가 셔틀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한번은 첫째 하원 셔틀 시간이 앞당겨졌다는 메시지를 둘째를 하원 시키는 중에 받고 부랴부랴 차를 몰았던 기억도 있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둘째를 아기띠에 넣어 안고 단지 정문으로 향한다.

- 오후 5시 17분

아침에 첫째를 보낸 그 자리에서 다시 첫째를 맞이한다.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나에게 주고 노래를 흥얼대며 집으로 간다. 종종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도 하는데 둘째를 안고 있는 아빠는 미안하다며 다음에 놀자고 이야기 해줄 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바로 저녁 준비를 한다. 아이 둘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먹이고 씻긴다. 이때도 첫째의 협조가 무척이나 필요하지만 대체로 아이는 차려놓은 저녁식사를 1시간에 걸쳐 먹곤 한다. (하..)

- 오후 7시 30분

아내가 집에 도착한다.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해야할 일들에 지친 아빠와는 달리 밝게 웃으며 하이톤으로 인사하는 엄마를 향해 아이들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아내가 올 동안 준비한 음식으로 바로 저녁식사를 한다. 빠르게 식사를 해야 아내도 아이들도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 오후 8시 30분

온 가족이 침실로 간다. 첫째 옆에 누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내가 책을 읽어 줄 때는 둘째를 재운다.

- 오후 9시 30분

대체로 이 시간이면 모든 가족이 잠에 든다. 나만 빼고.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서는 다시 집안일을 시작한다. 빨래를 돌리고 하루 동안 사용한 그릇들을 식기 세척기에 넣고 돌린다. 아이들이 사용한 젖병이나 이유식 숟가락, 젓가락 같은 건 따로 손으로 설거지를 한다. 음식물 쓰레기까지 비우고 조금 쉬다보면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세탁이 다 된 빨래를 세탁기에 오래두면 냄새가 나기에 빨래와 건조를 바로 이어서 한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직 이유식을 못 뗀 아이의 밥을 하기도 한다. 

- 새벽 1시

이제 나도 슬슬 잘 준비를 한다. 생산적인 일들을 조금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결국 오늘도 숏츠와 릴스를 번갈아 본다. ‘내일은 12시 전에 자보자’는 각오를 n일째 하면서 오늘도 잠자리에 든다. 

—-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을 꼽자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은 일을 실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디테일들은 조금씩 빼놓을수도 있겠지만 타임루프를 무한히 도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깜짝하면 하루가 지나있고 다시 같은 루틴이 반복된다. 

매운맛 육아가 시작됨과 동시에 좋은 점도 있다. 둘째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아직 ‘엄마’, ‘아빠’가 다인데 그 중에서도 ‘엄마’를 외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와이에서는 ‘알로하’가 안녕, 미안해, 고마워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걸핏하면 ‘알로하’를 외친다고 하던데 아이에게는 마치 ‘엄마’가 그런 듯했다. 배고플 때도 ‘엄마’, 기저귀가 빵빵해져도 ‘엄마’, ‘졸릴 때도 ‘엄마’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빠’로 바뀌었다. 아이의 입에서 엄마보다 아빠를 찾는 횟수가 많아지니 뭔가 내 육아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 ‘그게 그렇게 좋냐’고 하는데.. 좋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볼 수 있다는 건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행복한, 행복하지만 힘든 매일의 육아를 견디는 이유이기도 하다.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제안, 피드백, 질문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