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신청곡에 당황했지만, 덕분에 잊고 지냈던 '노래방 유전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TV 없이도 친구들에게 최신 노래를 공유받는 아이들 덕분에 난생처음 코인 노래방을 찾은 경험을 공유합니다. 과연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유전자'는 끊어질 수 있을까요? 아들 셋 아빠 정우님이 전합니다.

“아빠, 「내가 S면 넌 나의 N이 되어줘」 틀어줘"

뭐라고? 그게 뭔데? 노래 제목이라고? 그런 노래가 있었어? 누가 부른 노래야? 언제부터인가 아이들과 차를 타면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뽀로로며 아기 상어 메들리(?)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으면 저항 없이 따라 부르던 아이들인데 이젠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제목을 대며 노래를 신청한다. 이런 노래는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TV를 거의 보지도 않고, 보더라도 케이블 TV도 없어서 OTT 위주로 시청을 하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 친구들이 노래를 소개해 준단다. 참 좋은 친구들이네, 서로 취향도 공유하고. 원래 노래를 듣더라도 잘 따라가지 못해서 가사는 잘 안 듣는데 아이들의 신청곡은 나름 아이들과 흥겹게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노래 중 과나의 「응 내 알 바 아니야」는 개인적으로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들은 누가 뭐래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운드트랙이었다. 방과 후 집에서도, 이동 중 차에서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아직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지 못한 나조차도 음을 흥얼거릴 지경에 이르렀다. 지겨운 주말 저녁을 힘겹게 보내고 있을 때 문득 아이들에게 물었다.

“노래방 갈래?”

질문을 하고 놀랐다. 어릴 때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었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째서인지 친구들과 노래방에 있었다. 친구들은 앞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고 그걸 멀찌감치 앉아서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엄청난 이질감을 느꼈다.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이 현실이라기보다는 슬로 모션으로 흘러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손을 뻗으면 3차원의 사람이 아니라 2차원의 화면이 만져질 것만 같았다. 내가 속하지 않는, 속할 수 없는, 아니 속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장면 같았다. 그 길로 노래방을 나와 집에 가버렸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아, 미안)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노래방은커녕 음주가무를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성향도 유전처럼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의 부모 또한 어디 콘도에 놀러 가면 어쩌다 한 번 정도 노래방에 가는 정도였다. 제 발로 노래방에 가는 걸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가족이었다. 어쩌면 이 ‘노래방에 가지 않는 유전자’를 끊어내기 위한 결연한 마음으로 스마트폰 지도 앱을 열었다. 내 생에 지도 앱의 검색어로 사용될 거라 생각조차 없던 그 단어를 입력하기 위해. 꼴에 초심자라 시간제 노래방보다 몇 곡만 간단하게 부를 수 있는 코인 노래방이 낫지 않을까 싶어 ‘코’를 치자 ‘코스트코’, ‘콩국수’, 다음으로 ‘코인 노래 연습장’ 키워드가 추천되었다. 상단 검색어 두 개는 완전 내 취향이긴 한데.. 눈을 질끈 감고 ‘코인 노래 연습장’을 눌렀다. 다행히 지하철역 근처 번화가에 몇 개가 검색되었다.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저희들끼리 상의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노래방을 언제 갔는지 기억해 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코인 노래 연습장은 밝고 상쾌한 분위기였다. 넷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의 부스에 들어갔다. 코인 노래 연습장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동전 없이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했고, 곡 수뿐만 아니라 시간 단위로도 결제가 가능했다. 마이크에 뒤집어씌우는 일회용 커버와 아무리 닦아도 끈적일 것만 같은 리모컨. 간주 점프 버튼부터 찾았지만 역시나 그 버튼 글씨만 희미하게 바래 있었다. 제대로 왔구나.

차 안에서는 그렇게 쉽게 신청곡을 외치던 아이들은 처음이라 어색한지 쭈뼛쭈뼛했다. 「소다팝」, 「골든」, 「유어 아이돌」 등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들로 흥을 돋우었다. 막내는 랩 파트에서 망설임 없이 랩을 뱉어냈다. 그래 이게 케이팝이로구나. 얼쑤! 이름 모를 아이돌들의 노래 몇 곡과 「문어의 꿈」을 지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까지 부르고 나니 아이들의 신청곡이 소강상태로 들어섰다. 그럼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아님) 왼손잡이인 둘째를 보고 패닉의 「왼손잡이」를 안 부를 수 없지. 김광석도 갔다가 다이나믹 듀오(는 누가 봐도 무리) 잠깐 들렀다가 이문세로 마무리. 왜 너는 간신히 올려놓은 흥을 다 깨버리냐고 타박을 받던 대학생 때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때가 노래방을 갔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유전이라는 개념에 절망할 때가 있다. 경조사, 특히 결혼식에 갔을 때 그 감정이 두드러진다. 식장에 입장하기 전부터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식을 마치고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을 때가 절정이다. 옷을 어떻게 입었건, 나이가 적건 많건, 성별이 어떻건, 친가니 외가니 상관없이 이쪽 반은 이쪽 반대로 똑같이 생겼고 저쪽 반은 저쪽 반대로 똑같이 생긴 것이다. 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벗어날 수 없는 거구나. 허무함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나쁜 건 내 선에서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 덕분에 오게 된 노래방이었는데 나도 그때 그 시절 노래를 몇 곡 부르니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30분만 결제할까 하다가 60분을 하길 잘했다. 아이들은 숨이 턱까지 찼다가 목이 반쯤 쉰 상태로 노래방을 나왔다. 아이들과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건 늘 즐겁다. 아빠와는 달리 아이들은 흥을 더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아이들과 노래방을 가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역시나 처음 듣는 노래들이겠지?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59화 진짜 육아의 시작)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우와...이게 되네..?' 얼마 전 애 둘을 케어하는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글을 읽는 내내 그 대화들이 오버랩 됐습니다. 한 명 키우기도 버겁다 느끼는 저로서는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네요. 혁진님 화이팅, 아빠 화이팅! (홍대선)

💬 저의 미래 같습니다...23년 6월생 딸아이 그리고 26년도 5월에 태어날,,,, 아이 ㅎㅎ 저희도 양가의 부모님은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제가 육휴를 쓰기 전까지는 아내가 둘을 봐야하는 상황이 될텐데..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네요, ㅎ 올해와 내년 초까지 일 열심히 하고 육휴를 반드시! 써야겠어요. 혁진님 화이팅! (이/로/운아빠)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