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Event

지난 연휴에 보내드린 레터 156화 낳을까? 말까? 읽어보셨나요? 책 '낳을까 말까'의 원고 중 일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아래 버튼을 눌러 기대평을 남겨주시면 5명을 선정해 책 《낳을까 말까》를 보내드릴게요. 많은 관심 부탁해요🙏 (신청 마감: 10/16 목요일, 당첨자 발표: 10/19 일요일 레터 및 개별 연락)

* 구글폼에 문제가 있어 이벤트 신청이 한동안 불가했습니다. 지금은 정상적으로 신청 가능해요. 불편을 드려 죄송했습니다🙇‍♂️

Fathers’ Note

님의 이사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이사를 할 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학군, 가까운 학원, 안정된 환경…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본 질문이지요. 이번 주 레터는 ‘교육’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우리의 불안과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 본 이현이 아빠 규성님의 이야기입니다.

1.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을 1년여 앞두고 이사를 했다. 이사 후 처음 꾼 꿈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꿈은 그렇게 끝이 났고, 현실의 나에겐 이런 질문이 남았다. 

꿈은 곧 무의식의 발현이다. 나에게 질문하던 사람은 내 무의식적인 불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곧 학부모가 된다는 불안. 그럼에도 대한민국 학부모 답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불안.
 

2.
“이 아파트엔 초등학생들이 많이 안 살아요. 학교가 멀어서요.”

동네가 바뀌며 새로 만나게 된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건넸다. 이사 전에 들었더라면 결정을 한 번이라도 더 망설였을까. 아니면, 알았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국룰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같은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다. 둔감해지면 될 일인데, 교육과 자녀라는 단어 앞에서 둔감해지는 건 참 쉽지가 않다. 

3.
아이가 한 두살 이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아이 사진을 찍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아이가 이제는 찍는 것을 의식해서인 것도 있지만, 예전보다 피사체가 덜 귀엽다는 (대문자T 다운) 현실 인식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아이가 가끔 스스로 학습지를 펴고 연필로 숙제하는 모습을 보면, 오랜만에 사진을 찍게 된다. 별것 아닌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견함, 뿌듯함, 흐뭇함 등 찰나에 참으로 많은 감정이 오간다. 

고작 학습지 숙제 하나에 이 정도인데, 외국어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뤄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도파민은 얼마나 클까. 학습하고 성장하는 자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는 걸까. 

사람마다 정도와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육에 대한 욕구는 이중 어딘가에 걸쳐져서 마치 원래부터 있던 기본욕구처럼 위력을 발휘한다. 자아(自我)실현은 애초에 자아(自兒)실현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새꾸 실현’ 욕구가 문화를 불문하고 모든 부모에게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5.
처음엔 사람들이 멀쩡한 국도를 놔두고 조급함과 경쟁심에 비싼 민자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국도로는 갈 수 없는 길을, 혹은 국도가 무관심하게 방치해둔 영역을 민간업자들이 돌보고 채워, 사람들도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유료도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있어 보인다. 

교통사고의 절반 이상은 운전자의 실수보다 잘못 설계된 도로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도 처음 만들어질 당시엔 그 시절의 최신 구조로 설계됐겠지만, 그 사이 사회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전 국민이 일반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비싼 유료도로를 이용하고 있다면 일반 도로의 권위를 강조하기보다 왜 비싼 비용을 내면서까지 유료도로를 탈 수 밖에 없는지 그 사정부터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운전을 열심히 한 운전자는 잘못이 없다.  

6.
어떤 팟캐스트에서 ‘변화에 빠른 산업’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패널 중 한 전문가가 '변화가 가장 느린 영역은 법과 교육, 가장 빠른 영역은 사업과 비즈니스'라고 말한게 기억에 남는다. 성평등과 다양성 이슈를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또 가장 빠르게 철회한 것도 대부분 큰 기업들이었던 것을 보면, 가구와 비품들이 최신화되었을 뿐 교실 구조가 80년 전과 다르지 않은 걸 보면 일견 맞는 해석 같다. 

출생아 수가 매년 감소하는데도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건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4세 고시’와 ‘7세 고시’, ‘영어 유치원’, ‘초등 의대반’이란 단어는 모두 그런 사업 확장의 산물이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제 막 소통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글자가 빼곡한 시험지를 내밀까.

여기에 부모라는 늘 불안하고 취약한 집단은 최고의 마케팅 대상이자 고객이 된다. 상식 밖의 일임을 알면서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공포마케팅 하나에 기꺼이 지갑을 여니, 얼마나 공략하기 쉬운 소비자인가.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7.
초등학교부터 대입을 걱정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점점 내 아이 가까이서 들리니 느낌이 다르다. 1년차부터 12년 후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건 교육 시스템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바닥이고 불안은 얼마나 높기에 가능한 일일까. 

시스템에 기대 살아 남을 수 없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
가만히 있으면 뒤쳐질 것 같은 불안.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 같은 불안.
ChatGPT 유료 구독을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쓸 정도로 효율을 사랑하는 나라의 불안.

이 무수한 불안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종교부터 가져야 할까.

8.
술이 때로는 마약만큼 중독적이고 해로운데, 우리나라는 유독 술에 관대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술에 관대한 한국’ 이라고 검색하니 꽤 많은 내용이 나온다) 술과 함께 문화적으로 너무 당연하게, 너무  관대하게 바라보는 또 다른 대상은 ‘공부’가 아닐까.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밤 10시를 넘겨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 대학교를 위해서라면 하루에 12시간 넘는 공부도 허용하는 나라. 공부를 잘하면 나머지가 좀 모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라. 

공부의 목적과 양상은 제각각이겠지만, 그 기회 비용과 부작용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뿌리가 덜 자란 새싹에게 너무 많은 물이 주어져도, 너무 빨리 꽃을 피우거나 빨리 열매를 맺어도, 금방 시들 수 있다.    

9.
의사결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되돌릴 수 있는 결정(Two-way door decisions)과 되돌릴 수 없는 결정(One-way door decisions).

아이에 관한 부모의 대부분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처럼 보인다. 아이의 나이는 한 방향으로만 커가고, 이미 커버린 아이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양육자들이 선행학습에 투자하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사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런 의사결정의 관점은 꽤 ‘아웃풋 중심’의 관점이다. 아이를 ‘성과물’로 바라보고, 최대의 아웃풋을 위해 최대의 인풋을 투자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아이하는 하나의 인격체를 너무 ‘일’과 ‘성과물’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이미 태어난 것만으로도 인생 최고의 아웃풋인데 말이다. 

진짜로 되돌릴 수 없는 건 ‘어떤 결정’이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인 듯 하다. 영유아 시절도 그랬지만, 지금의 여섯살 심이현도, 다가올 일곱살 심이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사교육에 공들이는 만큼 아이와의 사적인 시간을 가지며 추억을 쌓는 것이 부모의 인생 관점에서는 훨씬 가성비 높은 투자가 아닐까.(지난 정민님의 레터를 보니, 아이가 나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결정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다른 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간은 번복할 수 없어도 결정은 번복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그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면 그 결정을 정체성 삼아 살아가면 될 것이다. 시험 문제처럼 삶의 모습에 한가지 정답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나는 아직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고 싶다.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