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농담 반 진담 반, 아이를 낳으면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일입니다.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선택. 오늘 레터는 선택의 기로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책 《낳을까 말까》의 저자 이혜인 작가가 보내드립니다. (레터 하단에 도서 증정 이벤트가 있어요!)

안녕하세요, 《낳을까 말까》를 쓴 이혜인입니다. 이 레터를 읽는 분들 중엔 지금 육아를 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언젠가는 부모가 되는 삶을 꿈꾸는 분도 계시겠죠. 그리고 아마 공동 육아, 아빠 육아에 긍정적인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같은 고리타분한 말은 안 하실 거라 믿어요.

《낳을까 말까》는 결혼 8년 차, 무자녀 부부로 살고 있는 제가 아이와 부모됨에 대해 고민을 풀어낸 책이에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서른 살 즈음 호르몬의 영향인지 ‘낳을까?’라는 질문과 직면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죠. 기후 위기, 젠더 갈등, 긴 노동 시간, 경제적 부담, 그리고 사랑까지… 총 16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은 그중 2장 ‘공동 육아라는 환상’ 파트를  소개할게요. 

솔직히 ’T’ 성향인 저는 육아에 딱 맞는 성향은 아니에요. 오히려 남편이 더 가정적이고, 따뜻하고, 이상적인 ‘아빠’에 가까운 사람이죠. 남편이 저보다 훨씬 가정적이며 이상적인 원가족에서 자랐기도 해요.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아, 저런 사람이 아빠라면 아이는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늘 아이를 낳자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어떻게 키울건데?”라고 물으면, “내가 먼저 육아휴직 할게. 너는 출산휴가만 하고 바로 복귀해!”라며 멋진 카드를 내밀곤 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아빠들이 육아 휴직을 하나 둘 쓰기 시작하는 분위기였어요. 솔직히 솔깃했죠.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여성에게 부담이 훨씬 많이 가해지는 기울어진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도 컸거든요. 그런데 남편의 이직 후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남성들이 육아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대개 번아웃이나 공황장애가 왔을 때, 아니면 커리어 포기를 감수할 때나 겨우 가능하다는 인식이 컸어요.

설령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해도, 가정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제가 육아를 맡는 편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남편의 수입이 더 많으니까요. 물론 제 능력 부족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한국이 세계 1위의 성별 임금 격차 국가라는 사실이 더 큰 이유겠죠. 실제로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30% 더 벌고 있잖아요. 결국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육아는 여성의 몫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수입이 많은 쪽이 커리어를 유지하고, 수입이 적은 쪽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이를 더 많은 시간 돌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선택만 계속된다면 우리나라에선 절대로, 남성이 육아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수입이 적은 여성이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기업은 계속해서 공백 없이 일하는 남성을 선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 《낳을까 말까》 123p 

이 레터를 읽는 분들 중엔 남성 독자도 많을 겁니다. 이미 육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겠죠.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려면 용기와 경제적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유로운 스타트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아니니까요.

정부나 기업의 제도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더 많이 말하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처럼요. 여성의 입을 통해 ‘남편이 얼마나 미숙한지’ 하소연하는 얘기는 이제 지겹지 않나요. 아빠의 입으로 들려주는 생생한 육아 이야기, 또 엄마 못지않게 훌륭하게 육아를 해내는 아빠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질수록 분위기는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더 이상 무언가와 맞바꿔야 하는 무거운 선택이 아니라, 가볍고 당연한 선택이 되는 데 분명 기여할 거예요. 

“공동 육아라는 희망이 저 멀리 있는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전형적인 ‘엄마’가 되었을 때, 과연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중략)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시간을 덜 보낼 수 밖에 없는 남편이 어리숙한 아빠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 《낳을까 말까》 126p 

책에는 이런 무거운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주사 맞는 것도 무서운 사람이라 출산 과정 자체가 두려운 이야기, 아이들이 태어나 자랄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서 망설이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그리고 ‘사랑’ 과 같은 간질간질한 단어에 흔들리는 이야기까지 담겨 있어요. 궁금하시다면 책을 한 번 펼쳐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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