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 준비는 잘 하고 계신가요? 매년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아이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한 살 더 먹은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하고 또 증명해야 할지 고민하는게 부모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 레터는 한 해를 묵묵히 살아내며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는 규성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1.

애: “엄마, 올해도 어린이집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대”
맘: “오, 잘됐네, 어떤 선물 받고 싶어?”
애: “글쎄…근데 그 산타 할아버지는 좀 이상해”
맘: “왜?”
애: “산타인데 너무 잘 보여. 뭔가 가짜 같아”

퇴근 후 저녁식사 시간, 아내가 하원길에 아이랑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이제 제법 머리가 컸는지, 산타클로스가 눈에 보여서 가짜 같다는 아이의 해석이 꽤나 날카롭게 느껴졌다.  

집으로 오시는 산타 할아버지는 항상 본인이 자고 있을 때 선물을 놓고 가셨으니, 눈앞에서 대놓고 오가며 선물을 주는 어린이집 산타가 이상해 보이는 것도 이상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무엇을 사주면 되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니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 또한 머리가 큰 것일까. 

아이의 묵묵부답이, 매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산타에게는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선물을 잘 고심해보라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2.

“한두 번쯤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상상 초월로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셨으면 해요”

썬파클 레터 연재를 시작하고 서너 편의 레터를 썼을 때 쯤, 육아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육아휴직과 복직을 갓 경험하며 양육자로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극심하던 시기에 쓰던 레터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 이후 나름 많은 글에서 육아의 행복을 써보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고충과 고통은 쓸수록 이야기가 커져 목표한 분량을 넘기기 일쑤였지만, 행복은 말로 표현하는 순간 오히려 작아지기만 했다. 

아이를 포옹했을 때의 2~3초간의 멈춤,
잠든 아이 곁에서 느끼는 냄새와 촉감,
한밤중 나란히 걸을 때 보이는 귀엽고 작은 그림자의 모습,
밤새 선물 포장을 하고 트리 아래 놓았을 때에 뿌듯함.

이러한 행복의 순간들을 어떻게 말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말로 옮긴다 한들, 진짜로 느꼈던 것만큼을 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은 진짜는, 보여지는 글이나 영상 안에는 없는 게 아닐까. 

3.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잠든 밤, 조용히 빨래를 시작했다. 

옷장 속 아이의 겨울 옷들을 꺼내 급속 코스로 돌리고, 어린이집 가방에 있는 수저통을 꺼내 설거지를 가볍게 끝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아이 방에 있는 가습기 물을 한 번 채우고, 남는 시간에는 건조기에 들어 있던 수건들을 꺼내 하나씩 개었다.

수건을 개며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엄마 아빠의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을 상상해봤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내가 잠들었을 때 이렇게 바빴을까. 그때는 건조기도 식기세척기도 없던 시절이었을 텐데, 수많은 가사 노동들을 어떻게 감쪽같이 해냈을까.  

양육자가 되고 나니,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지만, 가족의 하루를 다음 날로 이어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일들은 아침에 개어져 있는 옷과 수건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도, 눈에 띄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란 것도 안다. (물론 부부사이엔 예외다.)

매해 반복되는 크리스마스처럼, 어릴 적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 아빠의 밤들이 이제는 내 하루 속에서 조용히 반복되고 있다. 아이가 이불을 걷어차고 자고 있으면 이불을 덮어주고, 이불이 더워 머리가 땀으로 젖어 있으면 이불을 살짝 거둬 땀을 식혀주는 밤, 깨끗한 아침 식탁을 위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저녁 식탁을 정리하는 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를 느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밤이,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 달이 뜨는 것처럼 당연하게 반복되고 있다.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는, 그동안 부모로서 아이 몰래 조용히 해온 노력을 이 하루만큼은 눈에 띄게 드러내라고 만들어진 날은 아닐까. 설령 아이가 그 선물을 부모가 아닌 진짜 산타가 준 거라고 믿더라도 말이다. 

수건을 다 개고, 다용도실에서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이 들리자마자 젖은 옷들을 꺼내 하나씩 옷걸이에 걸었다. 잘 준비를 위해 샤워를 하고 양치를 한 뒤 침대에 누워 알람을 맞췄다. 그러다 잠에 들기 직전 갑자기 불안이 찾아와 아이 방에 들러 이마를 한 번 쓱 만져보고, 이불을 다시 덮어 준 뒤 나왔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기 전,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적었다. 

보이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며,
언제쯤 나는 이 숨은그림찾기를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잠에 들었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66화 새 식구)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저희 집에는 만 5살 아들이 생일을 맞이하여 거미를 키우고 싶다고 하여 들이게 된 5마리의 타란툴라가 있습니다. 종류도 다르고 지금은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 하나는 암컷일 경우 10년 이상 산다는것! (수컷은 암컷 수명의 반 정도라고 하네요) 아직은 작은 아기 상태라 성별은 모르지만, 이녀석들 암컷이라면 아이와 성장도 함께 하고 마의 사춘기도 함께 넘기게 될 거란 생각이 드니 왠지 정이 갑니다. 수북이 거북이도 오래오래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졸지에 타란툴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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