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안녕하세요 님. 오늘은 집안에 새 식구를 들이게 되어 복잡다단한 심경인 정민님이 보냅니다. 과연 무슨 일인지 정민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집안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거북이 두 마리.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집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집안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얼마 전 주말, 집 근처 다이소에 들러 필요한 것들 몇 가지 사러 간다던 모녀는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왔다. 계란만한 새끼 거북이 두 마리, 수조와 인공 수초, 건새우 먹이까지 두 손 가득 짐을 싣고서.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에 나와 보니 늘 집에서 무엇인가를 키우고 싶다던 둘째가 결국 소원을 이룬 것이다. (딸은 점점 애처로운 눈빛 공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이름도 정했어. 얘가 수북이고, 얘가 주북이야.”

주은이는 거북이들에게 ‘수북이’와 ‘주북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부모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녀석들의 이름을 지어 준 둘째는 수북이와 주북이의 양육자 역할을 맡게 될 터였다. 

하지만 웬걸. 

“엄마, 나가기 전에 물 갈아주고 가.”
“아빠, 밥 많이 주면 금방 큰대. 수북이 주북이 밥 조금만 줘.”
“거북이 변온동물이라 물 온도 맞춰줘야 한대. 수조 온도 맞추는 히터 사줘.” 

종알종알 잔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네가 데려왔으니까 네가 책임지고 키워야지! 라고 앞에서 볼멘 소리를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뭐든 잘 키우려면 신경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아이고야, 육아는 아이들로 족하니 집에 동물은 들이지 말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이왕 집 문지방을 넘어 들어온 생물을. 어쨌거나 키워야 한다. 누가 뒷바라지를 하든 간에. 

이왕 이렇게 된 것, 둘째가 같이 데려 온 동생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 제목 말마따나 ‘귀찮지만 행복해’ 지기로. 

파충류라 수온도 일정하게 맞춰줘야 하고, 매 주말마다 수조 물도 갈아줘야 하고, 때 맞춰 밥도 줘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오랜 기간 교감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건 긍정적으로 볼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아이들 기르는 와중에 계속 이쪽 저쪽으로 부모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거북이를 키워본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거북이들은 잘 관리해줄 경우 20-30년은 충분히 산단다. 직장 동료 중 하나는 어릴 때 키우던 거북이가 아직도 집에 살아 있다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언(?)을 보탰다. 

거북이 양육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수조 속을 헤엄치는 거북이들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그야말로 한 세대를 온전히 같이 살게 될 ‘반려’ 동물이로구나. 나와 아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같은 시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꽤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의지가 되어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거북이들이 새 식구로 들어온 이후, 가족들은 멍때리는 일이 많아졌다. 다름아닌 수조멍. 

집에 들어오면 다들 너 나 할것없이 수조 앞에 앉는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선 또 수조 앞에 앉아 거북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조그마한 수조에서 버둥거리던 거북이들은, 아이들이 다가오면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냉큼 앞쪽으로 헤엄쳐 나온다. 강아지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거북이도 주인을 알아보는 구나. 

“여보, 거기 앉아서 뭐하고 있어…?”
“그러게, 이게 중독성이 있네. 이상하게 자꾸만 바라보게 돼.”

거북이들은 묘하게 제 이름을 딴 존재들을 닮아 있다. 수북이는 먹이 받아먹으러 올때 빼곤 내내 수조 뒤에 조용히 숨어 있다. 영락없이 I형인 우리 첫째다. 주북이는 먹이 줄 낌새만 보일라 치면 앞으로 파닥파닥 헤엄쳐 오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활발한 게 꼭 둘째와 닮았다. 

수조를 뒤로 등진 채 옛날 사진 정리를 하는데, 십 년 전 아기일 때의 첫째 모습들에 눈이 간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십 년이란 시간이 참 금방이었다. 아장아장 걷던 첫째 모습이 선하다. 나중이 되면, 지금의 새끼 거북이 모습 역시 그렇게 기억하게 될지도.

거북이들도 다 자라면 수십 센티까지도 큰단다. 십여 년 뒤에 정말 그렇게까지 크게 될까. 그렇게 되면 수조도 더 큰 수조로 바꿔줘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아이들은 어른이 다 되어 있을 테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거북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가게 될까. 나중에 더 커서 독립하게 되면 한 마리씩 데리고 분가할 수도 있고, 아니면 본가에 두고 가끔씩 (부모가 아니라) 거북이들이 보고 싶어 집에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거북이들의 생애주기를 생각하다 그만 나와 아이들의 미래까지 자연스레 그려보게 되는 주말이다. 거북은 동양 문화권에서 장수의 상징이자 영물로 여겨지는 생명체이기도 하니, 새로 가족이 된 수북이 주북이도 아이들과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지내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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