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첫째는 21년생 5살이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춤을 좋아한다. 놀이동산에서 열리는 삼바 페스티벌에 흠뻑 빠져 집에서도 삼바 댄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차에서도 스파이더맨을 노트에 그려댄다. 할아버지 집에서 본 스파이더맨, 집에 있는 스파이더 장난감을 그려대며 ‘보세요. 스파이더맨이에요!’라며 자랑한다. 최근에는 자기 이름도 직접 쓸줄 알고 아빠 차 번호판도 읽을 줄 아는 수준이 되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건 신비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일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는 한 줌 크기였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줄 알게 되었다니. 그리고 말대꾸까지… 응? 그렇다. 정신차려보니 아이도 어느새 나름의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운 5살이라는 말이 있다. 워낙 말을 안듣기 시작하는 나이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말을 안듣기 시작한다는 건 자기만의 세상과 생각이 생겨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고 만들어냄과 동시에 부모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 한번 통과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자기만의 세계에 필터링을 한 후에 동의하면 순순히 따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대 의견을 갖거나 궁금증을 갖기도 한다. 

이 정도만 되면 좋으련만 때로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심취하느라 부모의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기도 한다. 마치 귀를 닫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속은 타들어간다. 빨리 밥 먹고 유치원 가야 하는데, 빨리 씻고 잘 준비 해야 하는데 아이는 들은체 만체다. 아이가 우리 이야기를 들은체 만체 할 때면 나와 아내는 ‘이서가 귀가 안들리나보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평소보다 1.5배쯤 커진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당연히 농담이지만 머릿 속에서는 ‘얘가 정말 귀가 안들리기라도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재촉해도 들은체 만체 하거나 별의별 핑계를 댄다. 아직까지 아빠가 하는 카운트다운 요법에는 조금 효과가 있기도 하다. ‘아들. 셋 셀동안 자리로 돌아와.’ ‘셋 셀동안 양치해’, ‘셋 셀동안 불끄고 방에서 나와’ 같은 말들이다. 그나마 카운트다운 요법도 요새는 말발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나와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부모 역할 훈련’을 알게된 건 아이가 말을 안듣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양육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우연히 ‘부모 역할 훈련’이라는 책을 소개 받았다. 다른 양육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북클럽을 열어 함께 읽을 사람들을 모았다. 한달 간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인상깊었던 구절에 밑줄을 치고 책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접히지 않은 페이지가 없을 정도였다. 

책에서 이야기하는건 크게 세가지였다. ‘적극적 듣기’,‘나-메시지’ 그리고 ‘제3의 방법’. ‘적극적 듣기’는 아이가 “싫어, 안 할 거야!”라고 소리칠 때 “싫구나, 지금은 하기 싫은 마음이구나” 하고 그대로 되짚어 주는 것이다. 한번은 이서를 크게 혼낸 적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서에게 ‘이서가 화낼 때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라고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안아주면 좋겠어요.’ 이 때를 떠올려보면 ‘적극적 듣기’는 ‘아이를 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으로 마음을 비춰주는 것’이라고 재정의 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대부분 내가 지금 한 행동이 혼날만한 행동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읽어주면 놀랍게도 아이는 더 이상 혼날 행동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 걸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메시지’는 갈등이 생겼을 때 “너 때문에 화가 나”라고 말하는 대신, “아빠는 네가 장난감을 치우지 않으니 발 디딜 틈이 없어서 답답해”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표현 방식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내 속마음이 아이를 탓하는 말에서 내 감정을 전달하는 말로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세 가지 핵심 개념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책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 삶 속에서 적용하려면 연습이 필요했다. 알아보니, 이 훈련은 원래 워크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검색을 하다 보니 내가 사는 노원구의 가족센터(가족센터라는 곳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에서 8주 과정의 부모 역할 훈련을 모집 중이었다. 개강이 코앞이었고, 비용도 내가 따로 듣게 되었다면 내었어야 할 비용의 1/10 수준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등록했고 주변 양육자들에게도 추천했다. 그렇게 부모 역할 훈련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제 2번의 회차 만이 남았다.

그 곳에서 만난 분들께서 ‘아버지가 이런 교육에 오시다니 대단하다’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난 왜 이렇게 유별나게도 ‘아버지’가 되어 아이와의 소통에 욕심을 내고 있을까. 그리고 깨달았다.

난 우리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 유난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실 때 커다란 피자 한판을 사오시던 모습. 기억 속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보며 웃고 계셨고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웃는 모습은 내가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하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군인이셨다. 가부장적이고 술을 좋아하셨다고 들었다. 부모님께서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어머니도 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자취를 했다. 고향 강원도 화천을 떠나 전라북도 전주로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갔고 자취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어린 아버지는 어쩌면 제대로 된 아버지의 모습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이름을 고등학생 때 미리 지어두셨다고 한다. 과연 결혼을 할지, 하게 된다면 언제 할지도 몰랐던 10대 소년이 가정을 꿈꾸고 아이의 이름을 미리 지어두었다니. 어쩌면 아버지의 꿈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어떤 다툼은 며칠이 지나 풀어지기도 했지만 또 어떤 다툼은 해가 바뀌도록 풀어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버지와의 지난한 다툼의 시간을 겪으며 느낀 것이 있다.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것.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만으로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나와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에 더해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버지와 부딪힐 때마다 느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나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나의 아이들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를 어떤 아버지라고 생각할까? 과연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말고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 기술을 터득한 아버지가 되어있을까? 어쩌면 난 우리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노력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아이들을 이해하는 기술을 가진 아버지가 되는데 도움이 되길, 아니 적어도 내 아이들이 '아빠처럼은 살기 싫다'고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들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데리러 갈게" 다섯 글자로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기. 정말 쉽네요! 수현님이 조만간 다음 찬스를 주실거라 기대합니다✨️ (버터컵)

💬 혁진님 글은 참 좋습니다. (불명)

💬 저도 더 자주 더 활짝 웃는 엄마가 될게요. 정민님도 파이팅! (초록테이블)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제안, 피드백, 질문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