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이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라는 말처럼 듣기 좋은 말도 없습니다. 하지만 안 닮았으면 하는 것까지 닮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죠. 세 아이가 모두 안경을 쓰게 된 날, 정우님은 생각이 많아졌답니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은 끝이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써야 할지도 모를 안경을 처음 쓰는 아이들을 보며 정우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세 아이 모두 안경을 써야겠네요”

초등학교에서 매년 1학년과 4학년을 대상으로 학생건강검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첫째와 셋째 아이의 결과지에는 시력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적혀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결과는 아니었다. 나도 그 나이 정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볼 때 더 멀리서 보게 할걸', '더 밝은 데서 책을 읽게 할걸', '못 이긴 척 건넨 스마트폰도 덜 줄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안과로 향했다. 이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워낙 많이 봤는지 안과 의사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 나를 보고 말했다.

“아빠가 안경을 썼으면 아이들도 쓰는 거죠 뭐”

"아, 그런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유전적인 건지 비슷한 생활 습관을 공유해서인지 아빠의 시력과 아이들의 시력에는 적당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만 같다. 의사의 말은 마치 나에게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듯.

그렇다.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내 역할은 결과에 다다른 과정은 잊고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다. 대부분 잔소리로. 다른 사람이 밟을 수도 있으니까 안경을 바닥에 놓지 않기, 안경을 벗어둘 땐 안경알에 흠집이 날 수도 있으니까 안경알이 바닥을 향하지 않게 놓기,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 눈이 더 나빠질 수 있으니까 자기 전까지 계속 쓰고 있기, 코끝에 걸쳐 쓰지 않기. 눈앞이 뿌옇게 되면 안경알 닦기 등등. 잔소리가 늘어나는만큼 아이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난다.

몇 년 전 아이 하나가 느닷없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얼마나 순식간이었는지 제주 여행 중이던 우리 가족 중 아이와 아내가 며칠 먼저 서울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동네 피부과를 거쳐 큰 병원을 갔다. 의사가 설명했다. 조직검사를 해 볼 수는 있다. 살을 조금 떼어내야 해서 흉이 남는다. 그래서 대체로 눈에 잘 안 띄는 허벅지 안쪽의 조직을 떼어낸다. 다만,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병명(?)을 알 수 있는 정도이지 치료는 어려울 것이다.

“조직검사 하실래요?”

지금까지 부모로서 아이를 대신해 많은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많은 선택을 대신 해야겠지만 이 선택은 특히 난감했다. 어차피 낫지도 못할 거라면 괜히 아이 몸에 흉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서 아내와 상의한 끝에 검사를 받지 않았다. 그 뒤 몇 차례 병원에서 자외선 광선치료를 받았지만, 의사 말대로 역시나 증세에 큰 차도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감기로 동네 소아과를 갔다. 의사가 아이의 피부를 언급했다. 그간 있었던 일들과 조직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치료는 못하더라도 원인은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다음에 오면 소견서 써줄 테니까 큰 병원 가서 조직검사 받아요.”

"아, 그런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잘한 결정이었을까 의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합리화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 아이는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름에 반팔 반바지를 입을 때마다 신경 쓰는 걸 모르는 게 아니어서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의 의견을 어디까지 들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아이의 의견을 묻는 게 맞나?

나는 호흡기도 피부도 좋지 않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금방 찼고, 태권도장에 가면 맨발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나이가 들어 그 증상들에 ‘알레르기 비염’과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병명(?)이 붙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많지 않았다. 증상을 잠시 완화하는 스테로이드 알약과 항히스타민 연고만 있을 뿐 이 증상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은 수긍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너 어릴 때 태열을 앓았던 적이 있었어”

연고를 바르고 있던 나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제주 여행 중이었다. 태열? 그게 뭐지? 태열이 뭔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 말에 뭔가 설명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런가?가 아니라 아, 그랬구나! 유전적인 것도, 생활습관 때문에도 아니고 그저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당연히 태열과 현재 내 증상들과의 상관관계는 알지도 못하고 아마 크게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엄마의 그 말은 내가 막연히 왜 이 모양일까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던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되었다.

어느덧 아이들은 난생처음 써본 안경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가끔 학교 갈 때조차 까먹고 안 쓰고 갈 때도 있기는 하다. 이젠 길에서 ‘아이고 아들이 셋이네’라는 말보다 ‘아이고 셋 다 안경을 썼네’라는 말을 더 자주 듣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다. 언젠간 축구하다가 헤딩을 할때, 농구하다가 골대 밑에서 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는 일도 있겠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휘어져있기는 안경다리들을 보면 심란하기도 하고.

여전히 스스로 안경알을 닦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 눈에 보일 때마다 닦아준다. 아직 조직검사를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본인이 원하게 되면 그때 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이들 옆에서 아이들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나중에 너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어. 아빠가 옆에 있었어. 아빠가 봤어.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또 그 말이 가슴 한편에 위로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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