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안녕하세요 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졸지에 아이 둘을 다 데리고 혼자서 여행을 다녀온 정민님이 보냅니다.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간 여행이라면 할만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진짜 그랬는지 정민님의 여행기를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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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초등학교에 보낼 때마다 늘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 모르던 세계에 진입한다는 것은 긴 육아의 여정에서 한번씩 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첫째가 지금과는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전에, 조금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일주일 전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면 보통 유연하게 출석 인정을 해주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부터는 개인적인 사유로 학교 수업을 빠지는 것이 제도상 쉽지 않은 곳이 많다. 지금도 학원 스케줄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부담도 많아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춘기의 목전에 와 있는 아이와 어디를 가면 좋을까. 짧은 유학생 시절, 아이가 아직 아장아장 걷던 시절을 보냈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함께 방문해서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미국 대도시처럼 볼거리가 많은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 직항편이 있는 곳도 아니지만, 아이와 둘이 보냈던 추억들이 보물처럼 담겨있는 동네다. 그곳이라면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여행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나. 학교 방학과 학원 방학이 겹치는 7말 8초 성수기에 예산에 맞춰 장거리 항공 티켓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몇 년동안 켜켜이 모은 마일리지를 탈탈 털어서 미국 동부로 가는 항공편을 탈 계획이었지만 세상엔 훨씬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1년 전부터 풀리는 마일리지 티켓은 이미 주요 취항지는 해당 시점에는 대부분 매진이었다. 결국 애초에 생각했던 루트와는 달리 보스턴으로 입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과 뉴욕을 거쳐 워싱턴DC로 출국하는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내가 일이 바빠져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저히 일정이 안나온단다.

대신, '방학인데 둘째도 데리고 가지 않으련…' (???)

결과적으로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셋이 떠나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조합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시도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또다른 미지의 세계가 펼쳐졌다. '뭐, 못갈 것도 없지' 라고 처음에 생각했다. 예전처럼 분유나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여행도 아니고, 둘다 이제 제 앞가림은 할 만한 나이는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계획은, 틀리라고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했다. 혼자 모든 스케줄과 끼니를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시차적응을 힘들어했고, 생각보다 한식을 피자나 햄버거보다 더욱 좋아했으며, 생각보다… 고집이 셌다. 우리는 서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했다. 

도시에 도착하면 대략적인 동선만 정한 다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 그게 여행의 원칙이 되었다. 이동 방법은 아빠인 내가 짜고, 세세한 것은 아이들이 정한다. 되도록 하루에 여러가지 스케줄을 넣지 않고, 한 곳만 정해서 둘러본다. 나머지는 모두 그날의 우연에 맡긴다는 원칙이었다. 

보스턴에서는 첫째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피규어 샵에 갔다. (여기까지 왔으면 하버드나 MIT를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조언은 가볍게 거부되었다.) 뉴욕에서는 맨하탄을 돌아다니며 '라부부' 구경을 했다. 아이들은 서로 세상 심각하게 상의하면서 이건 아무리 봐도 짝퉁이 아닌 것 같다고 꼭 사야 한다고 할머니께 받은 용돈을 주섬주섬 꺼내 셈을 치렀다.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에서는 수영을 했다. 한국만큼 더운 날씨에 지친 아이들은 물개처럼 몇 시간이고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몰랐다. 하루 대부분을 수영장에서 보내고 나서, 아이들은 한식을 찾았다. 한국의 세 배쯤 되는 가격의 한식당을 검색해 찾아가서, 떡볶이와 김치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긴 여행에서 그래도 몇 가지는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글쓰기 선생님이 은퇴 후에도 여전히 학교 근처에 살고 계셨다. 연락을 드리고 졸업 후 십여 년 만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뵈었다. 첫째는 아주 어릴 때 뵌 적이 있지만 당연히 기억을 못했고,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야 사진 속 그 분이 이 분이라는 것을 납득했다. 

은사님 댁에서 아이들은 신경써서 주문해주신 미국 스타일 한식을 먹고, 퍼즐 놀이를 하고, 강아지와 함께 놀며 두어 시간을 보냈다. 나역시 오랜만에 만난 은사님 부부와 함께 그간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마치 엊그제 보고 다시 만난 것마냥 자연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은사님 서가에는 내가 예전에 우편으로 보내드렸던 내 첫 에세이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도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신이 서재에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한글 책이라며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셨다.

바깥이 어둑해질 무렵, 아이들과 같이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집 밖에까지 나와 배웅하는 은사님 부부에게 차 밖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둘째가 차 뒤에서 한마디를 건넸다. 

“아빠, 아빠가 그렇게 많이 웃는 거 처음 봤어.”
“그래? 아빠가 그랬던가?”

여행중 계속 조금 긴장하고 있는 상태여서였을까. 오랜만에 마음 터놓고 수다를 떨다 보니 나도 모르게 꽤나 많이 웃었나 보다. 

“어, 그래서 좋았어 나도.”

양육자가 된 이후 아이들을 책임지고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적지 않았다. 육아는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아이가 한 말이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꽤나 무겁게 가슴에 남았다. 그래 그렇지.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며 계획대로 못한 것도 많지만,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며 새롭게 배우고 즐거운 순간들이 더 많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의 여정도 비슷할 것이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도, 계획보다 계획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내가 기꺼이 즐길 수 있다면, 나도 아이들도 한뼘 더,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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