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돌아온 날, 가방이 가볍네요? 역시나 수영복이 보이질 않습니다. 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시작된 잃어버린 수영복 찾기! 과연 삼형제는 수영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우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세탁기 앞에 가방을 던져두었다. 스스로 가방에서 수영복과 수건을 꺼내 세탁기에 넣으면 좋겠건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는 마음으로 나는 기꺼이 가방을 들었다. 그런데 가벼웠다. 설마.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가방을 열었다. 역시나 없다.

"박동준, 박동욱, 박동율!"

아이들은 안다. 성까지 붙여서 풀네임(?)으로 불린다는 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주로 이름을 부르는 사람 손에 슬리퍼(?)가 들려있는 그림이긴 하지만, 나의 손에는 빈 수영 가방만 들려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세탁기 앞으로 쪼르르 모여들었다.

"너네 수영복 어딨어?"

그렇다. 수영복, 정확하게 말하면 수영모, 래시가드, 수영바지 이렇게 3피스로 구성된 세트 3개가가 빈다. 용케 수건이랑 물안경은 들고 왔네.

"탈수기에 두고 온 거 같아요"

그렇지. 안봐도 비디오다.

언제나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방을 들고 오더니 언제부터인가 거의 마른 수영복을 들고 오더라. 아, 수영장에 탈수기가 있었구나. 내가 아이들과 수영을 같이 다녔다면 탈수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쳐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탈수기 돌리는 걸 어깨 너머로 보고 따라 해봤구나.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도 학습이 되는 게 쓸데없이 기특했다.

뭐, 잃어버릴 수 있지. 나만 해도 부모의 재산 상 피해를 기록한 누적 금액이 적지 않으니까. 자전거 몇 대에 우산 몇 개.. 음.. 그리고 필통, 물통 뭐 여러 가지였다.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는 거 다 안다. 아마도 셋이 같이 다니다 보니 누군가 챙겼겠지. 서로 미루다 홀라당 빈 수영가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겠지. 외동이었다면 자기 물건은 자기가 야무지게 챙겼으려나.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게 벌써 몇 번째냐고...

셔틀이 다니지 않는 언덕 위의 수영장. 구청에서 운영하(고 셔틀버스가 시간 마다 다니)는 구립문화체육센터 수영 수업은 대기가 너무 길었다. 기존회원들에게 다음 달 수강신청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라 우리 같은 신규회원들한테는 거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게다가 우린 세 아이를 같은 수업, 아니 적어도 같은 시간대에라도 보내야 해서 선택권이 많지 않다. 다행히 산 중턱에 셔틀이 다니지 않고 주차장이 협소한 청소년센터의 수영 수업에는 빈 자리가 꽤 있었다. 매번 누군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 와야하지만 이거라도 어디인가 싶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아이들의 선불교통카드를 편의점에서 사긴 했지만 나랑 같이 탈 때만 쓰고 아직 아이들만 따로 버스를 태워본 적은 없다.

수영장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수영장은 문 닫을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단다. 다만, 지금은 카운터에 남자 선생님들이 안 계서서 전화 받는 여자분께서는 남자 탈의실에 들어가 확인해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바로 출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언덕을 올라갔다. 역시나 주차장은 만차였다. 아이들을 내려주면서 '아빠는 저 위쪽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얘기했다. 

차를 세우자마자 아차 싶었다. 아이들의 수영복은 더 이상 탈수기 안에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들이 쓴 탈수기라면 다른 사람이 쓰려고 열었다가 그 안에 있던 수영복들을 다른데 옮겨놨을게 뻔하니까. 수영복이 탈수기 안에 없으면 그 근처를 찾아보라고 얘기할껄. 아이들도 이런 걸 알까? 하나하나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겠지? 게다가 셋 정도면 집단지성을 구축할 법도 하지 않은가!!

아이들은 내가 기다리고 있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튀어나왔다. 아이들이 셋이 석양을 뒤로하고 걸어오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인다. 기시감이 든다. 마치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누군가 “자, 드가자”라고 외치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비장하고 자신감에 차있으며 당당한 모습.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찾았구나!

사실 이날 찾은 수영복 3세트도 저번에 가방째 홀라당 잃어버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구비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한 달이나 지났나? 아이들은 수영장 분실물 상자에서 수영가방을 통째로 찾았다며 신나게 가방을 두 개 들고 왔었다. 그 땐 정말이지.. 한국에 여행와서는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운좋게 다시 찾은 외국인처럼 멍했던 기억이다. 한 달 동안 수영 가방에 들어있던 젖은 수영복 냄새처럼 그때 그 기억이 나와 아이들의 머리 어딘가에는 저장이 되어있겠지. 

그래 잃어버려도 돼. 웬만하면 다 찾아지더라고. 그런데 또 도저히 못 찾게 되는 것도 있어. 내 손에서 떠난 것들이 돌아오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언젠간 알게 될 거야. (자전거만 안 잃어버리면 돼. 자전거는 못 찾아. 맞다. 우산도)

몇 주 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수영장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집에 수영가방을 두고 갔단다. 후...

“박동준, 박동욱, 박동율!!!!!”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48화 Box box box!)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아이가 만 4세, 한국나이로 6세입니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이 내년에 예기치 못한 환경변화를 겪게 되어 고민이 많은 엄마에요.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짧게 써서 약 20개월정도가 남은 상황이라 초등 1학년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던 육휴를 조금 일찍 써 볼까 합니다. 아이와 함께 한국을 떠나 다른 문화와 기후, 환경을 경험하고 올 생각이에요. 하지만 주변의 많은 동료들이 직접적으로 업무 공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아이와의 시간이 '피트인'이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고 알차게 보내야겠어요. 레터 잘 읽었습니다 (엄마)

💬 오랜만에 피드백을 남깁니다. 담담한 글인데 여운이 길었어요. 저 역시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버거운 나머지 쉬운 자극과 핑계, 자기연민에 기대기도 한 적이 많은 것 같아요. 직시해볼 기회가 있다는 건 다행입니다. 혁진님의 소중한 생각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래의 나는 지금 이 시간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정말 이처럼 답이 심플한 세월도 없는 것 같아요. 맡은 일 성실히 하면서 아이를 튼튼하게 잘 키우면 되지요. 말은 쉽네요. 물론 너무나도 빡세지요.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행복이 모두 집에 알콩달콩 있으니 힘을 내야지요. 

다 잘하진 못해도 이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 그 자체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여유가 없는 틈을 타서 몇 십년간 저를 괴롭혀온 강박에서 벗어나 보려고 해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홍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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