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은 언제 행복하신가요?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숨어 있곤 합니다. 잘 정리된 집, 멋진 휴가,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잃어버린 재미와 행복을 찾는 소소한 순간들이 있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게된 이현이 아빠 규성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1.

탁 트인 여름 바다. 활기찬 해외의 거리. 휴양지의 햇살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수영과 모래놀이를 하며 계절을 만끽하는 아이들. 바쁘지 않은 일상과 문제 없는 하루. 

이것은 꿈일까 생시일까. 분명 꿈이 아닌 생시인데 꿈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애초에 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길어야 1분, 짧으면 3초 남짓으로 접하는 콘텐츠가 왜 그토록 보고 싶을까?

소셜미디어라 불리는 이 세계에선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 무한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조금 이상하게 먹으면 불특정 다수의 삶이 내 삶의 비교군이 되어 부러움과 공허함이라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무언가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이 세계에서 과연 이기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이번 여름 동안 이긴 적이 없다. 

항상 나의 현실보다 좋아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부러움은 이내 열등감이 된다. 그리고 현실은 항상 그 감정의 땔감이 되어 실제보다 과장된 불행을 만들어 낸다. 

가족이 생기고 나서 좋은 점은 행복할 땐 두 배, 세 배 더 행복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불행 역시 두 배, 세 배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행복도 그렇지만 불행의 기운 역시 마치 여름 소나기처럼 종잡을 수 없이 찾아와서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해야 할 때가 많다. 어느 출근 길이 그랬다. 

“우리.. 요새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같아..” 

엄마의 한 마디로는 아빠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들이 쐐기를 박는다. 

“아빠.. 지루해.. 재밌는 거 없어?”

순간적인 거라고, 쇼츠나 릴스처럼 이 감정 또한 숏폼일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나 또한 재미란 걸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 순간마저도 유머로 승화시키며 가족 구성원을 단숨에 웃기는 기지를 발휘했겠지만 내 능력치상에는 그런 기술 대신 상황을 더 진지하게 악화시키는 능력만이 존재했다. 심지어 공감 대신 공동의 책임을 강조하는 아주 별로인 방식으로.

“응, 이사 끝나면 좀 나아질 거야. 할 게 너무 많네…”

2.

이사가 끝난 지 일주일째. 집을 나간 재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골치가 아팠던 집 대출도, 입주청소도, 인터넷과 에어컨 이전 설치도 잘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의 잃어버린 재미는 어디서부터 되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이사 전까지는 이사 때문에 바빠서란 핑계를 댔지만, 이제는 더 댈 수 있는 핑계거리도 없었다. 아빠이자 남편이란 사람이 재미 앞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새 집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듯했다. 아빠, 엄마는 이사 이후 정리되지 않는 집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그럴 때마다 의지할 수 있던 애착 물건들은 어디론가 흩어져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응이 쉬울 리가 없었다.  

모든 게 어색하고 경직된 순간, 거실에 포장된 채로 쌓아 둔 짐들을 하나씩 풀다가 작년 겨울에 샀던 커다란 눈썰매가 바깥으로 튀어 나왔다. 아이는 썰매를 보자마자 갑자기 흥겨워하더니 이불 가방 하나에 모아놓은 인형들을 꺼내 썰매에 인형들을 태웠다. 이어 새 집 곳곳을 즐겁게 누비면서 오래된 친구들에게 새로운 모양의 방과 집안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은 우리 집에서 가장 행복하고 재밌어 보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자세히 보면 등이 신나 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새삼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재미 대신 물건들을 먼저 찾고 있을 때 재미를 먼저 찾는 아이를 보며, 내가 집에서 쉬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개선할 궁리만 하고 있을 때 집에서 재밌게 놀 궁리만 하는 아이를 보며, 재미가 왜 집을 나갔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여름에 하는 이사를 앞두고 최근 내 일상은 온전한 이사를 방해하는 요소와 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짧은 출근 길에는 대출 이야기를 하고,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짧은 순간에는 이사 전에 해야할 일들을 이야기하며 집을 마치 회사처럼 만들기도 했다.

아이 입장에선 아빠란 사람이 매일 신경이 곤두선 채로 출퇴근을 하고, 집에만 오면 자기와 놀아주는 대신 엄마와 심각한 이야기만 하다 잠이 드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재미없고 답답했을까. 

급한 일, 중요한 일, 해야할 일이 끝나면 재미든 행복이든 알아서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결국 내가 만드는 거였고, 재미와 행복도 거창한 날에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찾으려 애쓰고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어수선한 집 안에서도 재미를 발굴해내는 아이를 보며 깨닫고 느낀다. 

어른답게 물건 정리를 끝내고 노는 게 항상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과 함께 노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이와의 삶에선 더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어떤 물건들은 영원히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고, 어떤 물건들은 다음 이사 갈 때야 찾게 될 수도 있는 게 삶의 모습이니까. (이번에도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많이 찾았다)  

새삼 썰매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가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내 아이에게는 매일 기꺼이 지고 싶다. 그 지는 순간이야말로 내 행복의 가장 확실한 원천인 누군가가 이기는 순간일 테니까.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50화 아이들과만 떠나는 여행)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저도 더 자주 더 활짝 웃는 엄마가 될게요. 정민님도 파이팅!  (초록테이블)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