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와 한 약속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실천하고 싶은 건, 스마트폰 노출은 최대한 늦추자는 것이었다. 사실 영상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영상 콘텐츠도 많고, 감동을 주는 애니메이션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걸렸던 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였다.

작은 화면 안에서 끝없이 스와이핑하며 넘기는 짧은 영상들. 보고 또 보고, 손가락 하나로 다음 걸 재생하며 중단 없이 흘러가는 구조는 아이에게 마치 '디지털 슬롯머신'을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참을성과 집중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이런 ‘즉시 보상’이 반복되면 결국 자율성이 무너진다.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에서도 “영상 중심의 소비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떨어뜨리고, 감정 조절과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의 뇌는 아직 한참 자라는 중이다. 그 시기에 너무 자극적인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는 건, 좋은 씨앗이 감당못할 폭우를 계속 쏟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대안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중심에 둔 육아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영상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까? 아이가 몰입할 수 있을까?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는 다양한 오디오 플랫폼에서 영어와 한글로 된 동요, 전래동화, 창작 동화를 찾아 틀어줬다. 차 안에서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서에게 건네주어 듣게 했고 이서는 스피커를 한 쪽 귀에 댄채 조용히 집중하곤 했다. 어느 날엔 동요를 따라 부르고, 어느 날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그 상황을 따라 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역할놀이로 이어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세상이 넓어졌다.

중학생이던 시절, 국어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티비 보다는 글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 속에 티비보다 훨씬 큰 '100인치 짜리 스크린'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100인치가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지만 수십년 전 나에게 100인치 스크린이라는 건 읽고 들으면서 뇌가 하는 ‘상상’의 효과를 가늠케 하기 충분한 크기였다.

오디오 콘텐츠를 듣는 이서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 머릿 속에 100인치 짜리 스크린이 펼쳐졌겠구나.' 요즘 기술로 이야기 하자면 3면이 스크린으로 이뤄진 아이맥스 4D가 펼쳐지고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디오 콘텐츠를 고르는 건 늘 부모의 몫이었고 아이에게는 스스로 콘텐츠를 탐색할 권한이 없었다. 부모가 뭔가를 찾아 틀어주는 구조는 결국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거 들어볼까?”

“이거 재밌어. 아빠가 골랐어.”

“이번엔 뭐 듣고 싶어?”

이런 대화의 과정에서 아이는 늘 수동적인 감상자가 되는 구조였다. 게다가 아무리 오디오 콘텐츠를 들려주려고 해도, 플랫폼 접근이 스마트폰 기반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이었다. 아이가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넘겨주자니 언제 어떻게 다른 앱을 열지, 혹은 다른 영상으로 연결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콘텐츠를 고르는 도중에 광고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추천 알고리즘이 성급히 어른용 콘텐츠를 제안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우연히 ‘코코지’를 알게 되었다. 귀여운 집 모양의 디바이스 '코코지 하우스', 그 위에 ‘아띠’라는 작은 피규어 인형을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그 아띠에 담긴 오디오 콘텐츠가 재생되는 오디오 플레이어였다.

코코지를 처음 집으로 들여왔던 날이 생생하다. 상자를 열고 코코지 하우스와 아띠를 꺼내자마자 이서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내 거야?”

“이거 어떻게 작동해?”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서는 아띠를 하나 집어 코코지 하우스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곧이어 익숙지 않은 목소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 나는 연주가 노벨이야. 오늘은 너에게 신기한 악기를 소개해줄게.”

아띠 위로 조명이 켜졌다. 이서는 빛나는 아띠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조용히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서의 눈이 반짝였다.

코코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진 이서

이서는 아침이고 저녁이고 아무 말 없이, 코코지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서의 침묵은 여러모로 반가운데 특히나 반가운 이유는 이서가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중하는 순간이 좋다. 끝도 없는 아이의 잠재력을 스스로 쌓고 키워가는 느낌이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이서는 꾸준히 아띠를 사용하고 있다. 해를 지나 커감에 따라 좋아하는 아띠가 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아띠를 찾고나면 한참이나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요즘 이서가 가장 좋아하는 아띠는 연주가 노벨 아띠와 탐험가 브레이니 아띠. 전자는 동화와 음악을 엮어 들려주고, 후자는 “바람은 왜 불어?”, “코딱지는 왜 생겨?” 같은 질문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풀어준다. 하도 열심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제는 이서도 완전히 외울 정도가 되었다. 키즈카페에 가서 스펀지 재질로 된 놀이기구를 가지고는 ‘이건 콧털이야’라면서 여러개를 바닥에 꽂으며 놀기도 하고, 어느 날 아침에는 밥을 먹다 말고 손짓을 해가며 ‘뜨거운 바람이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찬 공기가 들어오면 바람이 만들어 지는거야’라고 하는 것이다. 코코지를 사용한 후부터 이서는 머릿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고, 더 긴 이야기를 만들고, 더 오래 집중하게 되었다.

썬파클 육아 단톡방(입장비번 : 0206)에서 알게 된 꿀팁도 있었다. 코코지에는 ‘매직 아띠’라는 특별한 아띠가 있다. 거기에는 부모가 직접 동화를 녹음해서 아이만을 위한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다. 요즘 많이 활용하는 ChatGPT를 사용하면 아주 쉽게 동화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ChatGPT에게 “3세 아이를 위한 동화를 만들어줘. 5분 분량이고, 주제는 ‘만두 가족 이야기’야. 사이좋은 엄마 만두와 아빠 만두에게 아기 만두가 태어나고, 그 아기가 멋진 청년 군만두로 성장하는 이야기면 좋겠어.”라고 쓴다. 그러면 꽤 그럴싸한 동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화를 부모의 목소리로 녹음해 매직 아띠에 담고 아이가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양한 아띠를 바꿔가며 본인이 원하는 이야기를 듣는 이서. 때로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밥 먹는 것도 잊고 코코지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하는 이서. 이서가 매일 들으며 매일 커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도 없다. 

이서는 코코지를 들을 때면 아띠들을 모두 꺼내놓고 이야기를 재현한다.

코코지 하우스 안에 아띠를 올려 놓으면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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