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님은 몇시에 주무시나요? 취침시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사항입니다. 특히 부모에게는 아이의 취침시간이 더욱 신경쓰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중요하다는걸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적게 많고 많이 움직이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이의 취침시간 때문에 고민이 많은 이현이 아빠 규성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우리 가족은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만난다. 

아침 여덟 시쯤 헤어져 다시 만나는 시각은 대략 밤 아홉 시. 아침엔 출근하느라 바쁘고, 저녁엔 집에 오는 시간이 서로 달라서 주말이 아니고서야 같은 식탁에 둘러앉기란 쉽지 않다. 평일에 가족으로 함께 있는 시간은 등원 및 출근길 차 안에서의 30분과 아빠가 귀가한 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의 1시간 정도가 전부. 우리 가족은 함께 식사하는 식구라기보다는 출퇴근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인생 6년 차 아이는 어느덧 4년째 등하원, 아니 출퇴근을 하고 있다. 유치원 대신 직장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는 월요일이 되면 “몇 밤 후 어린이집 안 가?” 를 묻고, 주말엔 “몇 밤 후 이 주말이 끝나?” 를 묻는다. 일을 안할 뿐, 마음가짐만큼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주 5일제 직장인이 된지 오래다. 

아이에게 반복적인 등하원만큼이나 힘든 건,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는 아빠의 반복적인 잔소리다. 말하는 본인(=나)도 느낄 만큼 매일 밤 놀랍도록 똑같은 잔소리를 하지만, 그 중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늦었어.” 이다.   

“이제 영상 그만~ 늦었어.”
“양치하자~ 늦었어.”
“책 더 못 읽어~ 늦었어.”
“자야해~ 늦었어…”

아이는 그저 아빠가 자기를 빨리 재우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신데렐라 시계처럼 나름의 기준이 있다. 바로 오후 10시. 10시 전까진 어떤 놀이든 간섭하지 않지만, 10시 이후엔 양치, 책읽기, 불끄기 등 잠들 준비에 집중 아니, 집착해야만 한다. 그래야 10시 30분에 침대에 눕고, 11시 전에 잠이 든다. 

어쩌다 아이가 10시 30분이 지나도록 잠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분 단위로 수많은 생각이 밀려들고 급격히 예민해진다. 또래보다 작은 키, 올해 유독 짙어진 눈 밑 다크서클, 아이치곤 너무 늦은 취침 시간과 짧은 수면 시간, 아침마다 느껴지는 짜증과 피로. 그리고 이와 다소 상반된, 맞벌이 부모로서 같이 시간을 많이 못 보낸다는 죄책감까지.

이런 내 마음을 다시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건, 의외로 예민함의 원인인 아이와, 밤이 깊어질수록 낭만파가 되는 아내다.  

아이 : “아빠, 나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역할놀이 하는데 자꾸 아빠만 해서 힘들어, 아빠도 아빠하기 힘들지?”

아내 : “늦게 자도 돼~ 스트레스받으며 억지로 자는 것보다 아빠, 엄마랑 놀다 행복하게 자는 게 더 중요하지~”

내가 재우는 시간에 예민해지기 시작한 건, 아이가 올해 낮잠 없는 5세 반으로 올라가면서부터였다. 매일 오후 1시에서 2시까지 자던 낮잠 한 시간이 사라졌으니, 한 시간 만큼 더 피곤하고 그만큼 더 일찍 잠들 거라 예상했지만, 이상하게도 잠드는 시간은 작년과 같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도 비슷한 시간에 잔다는 아내 말을 들을 때면 잠깐 안심하다가도, 아이의 짙은 다크서클을 보면 ‘이게 최선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근본적인 질문에 닿게 된다.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작년 11월,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의 추가 모집이 확정되기 전, 혹시 몰라 주변 유치원 입학 설명회를 다닌 적이 있다. 그중 한 곳을 유력 후보로 점찍고 설명회에 갔지만, 몇 가지 설명을 듣고 곧바로 원서 접수를 포기했다. 첫 번째 이유는 연장 보육이 오후 6시까지라는 점, 두 번째는 방학이 3주나 된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는 돈을 들여 하원 도우미를 구하는 등의 어떤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두 번째는 맞벌이 체제에서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초장기 휴일이었다. 아빠, 엄마가 각자의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며 자력으로 한 아이를 키운다는 당연한 명제가, 그 유치원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결국 우리는 저녁 7시 30분까지 아이를 돌봐주고 방학은 단 3일만 있는 지금의 어린이집에 T/O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한 해 더 연장을 결정했다. 덕분에 누구 하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지만, 아이 또한 회사 같은 어린이집을 그만두지 못하고 어른의 경제활동에 맞춰진 생활을 1년 더 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아이가 올해 지금의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갔다면 조금 덜 피곤한 생활을 했을까?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간에 동기화된 삶이 아닌, 유치원생다운 시간표로 생활했다면 더 건강하게, 더 빠르게 자랐을까? 어른의 경제활동에 아이가 맞추는 게 아니라, 어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에게 맞췄다면, 평일에도 저녁을 함께 먹는 식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현실을 바꿀 힘도, 용기도 없으면서 이런 질문만 되풀이한다.

주말에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를 밤 9시 전에 재울 수 있을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유치원의 보육 종료 시간인 오후 6시는, 어쩌면 아이를 제때 재우기 위한 부모의 퇴근 권장 시각이 아니었을까. 같은 맥락에서 “늦었다”는 말은, 엄마 아빠와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자야 할 시간이 되서야 집에 오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말이 아닐까.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관련된 영상 하나를 추천해준다. 제목은 <키가 크려면 10시에 자야 한다? 사실이 아닙니다>. 시작부터 잠드는 시간보다 숙면의 총량이 더 중요하다 이야기가 나온다. 밤 11시처럼 늦게 자도 행복하게 숙면을 하면 성장 호르몬이 잘 분비될 수 있고, 밤 8시처럼 일찍 자도 수면의 질이 나쁘면 키는 안 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나 몰래, 슬쩍 내 알고리즘에 이 채널을 숨겨놓은 걸까. 

아무튼, 아내 말은 일단 듣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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