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육아휴직 중인 아이 셋 아빠 정우님이 슬슬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회사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 속에서 정우님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집이라는 울타리,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 그리고 삶의 결정들 속에서 느꼈던 정우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1.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아빠가 이제 다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안 돼!!!!!!”

“왜”

“집에 왔는데 아빠가 없으면 이상할 거 같단 말이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랜만에 회사 이메일에 접속했다. 2023년 7월 1일부터 2026년 4월 30일까지. 승인이 될지 조마조마했던 총 34개월의 육아휴직 중 벌써 24개월이 지났고 이제 열 달이 남았다. 아이들과 1년 동안의 해외생활 그리고 돌아와서는 다시 적응하는데 1년이 지났다. 막내아이까지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업무 경력과 같이 육아휴직 경력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지나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쑥쑥 컸다. 아이들은 어느덧 두자릿수 곱셈을 하기도 하고 바둑판을 앞에 두고 혼자 가상대국을 하기도 한다.

문득 집에서 나의 쓸모가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더 이상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할 정도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기껏해야 울거나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스스로 냉장고 문을 벌컥벌컥 열기 시작했다. 아직 밥을 차려먹거나 과일을 깎아 먹지는 못하지만 이제 어디 내어놓아도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안심이 되기도 하고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한창 때는 세 아이 모두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격세지감이다.

육아휴직은 집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잠깐씩 보던 아이들과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의미였을까. 나에게 육아휴직 동안 집은 육체적/정신적 안식처라는 의미가 확고해지는 기간이었다.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면 집이 갖는 의미가 나나 아이들에게도 바뀌겠지.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아야 할 텐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 괜히 나만 걱정하는 거겠지?

2.

“아빠는 어떤 사람 같아?”

“좋은 사람”

“그렇구나”

“그런데 그건 왜 물어?”

“그냥,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아이의 종합병원 진료를 마치고 (한 번 밖에 안 가봤지만) 둘만의 아지트 느낌인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오르막길에도 나의 손을 잡아주는 이 초등학생은 누구인가. 이 아이의 아빠인 나는 얼마나 큰 행운아(빠)인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라는 질문까지 완벽했다. 네가 먹은 칼국수와 내가 먹은 콩국수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던 바싹불고기. 왼손잡이인 아이와 마주보고 앉으니 거울 같았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잘 컸을까.

3.

수영장에서는 동그란 원이 몇 개씩 듬성듬성 생긴다. 아빠들 주위로 아이들이 만드는 원. 

숨을 들이마시면 몸이 떠오르고 숨을 내뱉으면 몸이 가라앉았다. 떠오른 몸은 수면을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가라앉은 몸은 하염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바닥에 발이 닿고도 남았지만 수면과는 멀게만 느껴졌다. 눈으로 아이들을 찾았다. 수영장 물이 막내의 턱 밑에 있는 걸 보니 물의 높이는 110cm 정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벽에는 ‘깊이 : 110cm’라고 써 있었다. 높이와 깊이. 정반대 의미 같지만 결국에는 같은 의미인가? 아이들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은 나에게 우르르 몰려왔고 나는 왜인지 물 속 깊은 곳으로 숨었다.

4.

“형이 얼마전에 가족들이랑 유럽여행 다녀왔잖아. 그런데 네 생각이 나더라. 너는 어떻게 아이들 다 데리고 캐나다를 다 갔다왔니. 정우야, 너 그거 정말 대단한 거야”

친척 형이랑 통화하다가 느닷없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육아휴직이 결정되고 우리는 캐나다로 떠났다. 떠날 때도 확신은 없었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결정에는 여러 문제가 따랐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는 되돌리기는커녕 회복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갈 때 까지만 해도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확신은 없고 회의적일 뿐이었다. 떠나기로 한 게 잘 한 걸까? 가서 1년만에 돌아온 건 잘 한 걸까? 아이들을 생각했으면 애초에 안 가는 게 맞았을까? 갔으면 그래도 더 버텼어야 했나? 이럴 거면 애초에 왜 갔을까?

내가 주도한 결정에 누군가 계산서를 들이민다면 이익이 손해를 초과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나의 결정에 대한 의심이 들었고 후회까지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이 나이 40 먹은 나에게, 아이 셋과 함께 자라고 있는 나에게 이토록 따뜻한 말을 하다니. 진심으로 고마웠다.

시리도록 추운 겨울 끝에 잠깐의 봄이 왔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여름이 왔다. 다가오는 계절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때가 되었다. 용기를 내어야 할 때. 육아휴직을 신청할 용기라면 다시 돌아갈 용기 쯤이야.

다시 회사 이메일에 접속해 조기 복직 의사를 밝혔다.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아빠가 회사를 다시 다니면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에 잘 적응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너무 잘 적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아이와 두 손 잡고 진료를 받고 둘만의 맛집으로 갈 수 있기를. 배영을 하겠다는 아이의 등을 손으로 받쳐 줄 수 있기를. 언젠가 나도 바둑을 배워서 아이와 함께 대국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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