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2주 전 육아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주관한 ‘해피 파더스 데이’라는 이름의 행사.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었다. 아빠들뿐 아니라 양육자, 아이들이 함께 와서 게임도 하고 행사도 즐기고, 도시락도 먹고, 양육자를 위한 강연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가족을 위한 뮤지컬도 준비 되어 있었고, 양육자를 위한 강연 시간엔 아이들을 맡아주는 돌봄 서비스도 제공되었다.

강연자로 초청받았지만, 이런 자리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기에 우리 가족도 8개월 둘째까지 포함해 전원 출동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준비해주신 도시락을 먹고 강연 준비를 하러 가는데, 첫째가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함께 가기로 했다. 대기실로 같이 가서 다른 강연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와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예전엔 일터에 아이를 데려오는 다른 사람들 보면 ‘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와 함께 강연 대기실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형언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연 시작에 앞서 첫째는 돌봄 클래스에 들어가고 둘째는 아내가 보고 있기로 했다. 첫째를 돌봄 클래스에 데려다 주러 간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첫째가 돌봄 수업에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중이라는 거다. 강연이 시작하고 나서도 아내는 첫째를 달래느라 강연장에 들어오지 못했고, 결국 난 둘째를 유아차에 태운 채 무대 앞으로 나가야 했다. 나를 소개하던 사회자도, 강연에 참석한 양육자들도 잠시 당황한 눈치였다. 상황을 설명하자 객석에 앉아 있던 양육자분들이 이내 박수를 쳐주시며 격려해주셨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강의 제목은 ‘사랑받는 아빠가 되는 현실 육아’였다. 스스로를 아주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내와 잘 지내고 있고, 그 나름의 방법들을 정리해봤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메시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선 세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 ‘아이’, 그리고 ‘부부’.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부부’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원팀(one-team)’이라 생각한다. 부부가 아닌 둘 이상의 양육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양육자 간의 관계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양육자 간 팀워크를 키우는 건, 결국 좋은 가족이 되기 위한 기본값 같은 거라 생각한다. 팀워크의 시작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말을 듣기보다는 신뢰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자신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에서는 신규 직원이 입사하면 첫 한 달 동안은 시간의 80%를 구성원을 알아가는 데 할애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구성원 간의 친밀도가 높아져야 신뢰감도 쌓이고, 그래야만 팀워크도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침엔 아이 등원(교) 준비하느라 정신 없고, 저녁엔 퇴근하자마자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숙제 봐주다 보면 양육자도 지치기 마련이다. 육퇴 후에라도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유튜브 보고 넷플릭스 보다가 잠자리에 들곤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대화의 시간은 의식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주제는 다양하다. 아이 방에 널부러진 장난감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첫째가 말더듬 증세는 어떤지, 둘째 이유식은 지금 적당한 양인지, 아직 1년 반이나 남은 이사는 어느 동네로 하면 좋을지, 새로 뽑힌 대통령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양가 부모님의 건강은 어떤지. 대단한 대화는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 각자의 고민과 생각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중요한 건 ‘주제가 아니라, 나누는 것 자체’라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웃고, 공감하고, 관계가 깊어지는 거니까.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안 해도 알겠지’  하면서 말을 아끼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거리감을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우리 부부도 가끔 티격태격하고 서운한 일도 생긴다. 근데 그 감정조차 조금 시간이 지나면 대화의 소재가 된다. ‘그때 그게 서운했어.’, ‘앞으로 이렇게 해보면 어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히려 좋아'라고나 할까?

좋은 팀은 그레이 영역의 일이 생겼을 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역할이 아닌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는 나서서 하겠다고 하고,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상대의 바톤을 받아주는 것. 그게 진짜 ‘원팀’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아내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록 상대의 현재 마음 상태와 기분을 더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믿게 되고,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더 든든한 팀이 될 수 있다. 신뢰감이 깊고 서로를 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이어야 가정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건강한 어른으로 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부부는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려 한다. 작지만 소중한 삶의 대화들을.

(돌봄 교실에 들어가지 않은 첫째는 동생과 함께 의젓하게 앉아 아빠의 강의를 다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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