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육아를 하면서 정말 싫어하거나 못 견디는 게 혹시 있나요? 하와이에서 사 온 화산 실험 장난감을 송이와 가지고 놀던 현님의 고백을 전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모처럼 별다른 일정이 없었던 6월 초. 대통령 선거일까지 겹쳐 징검다리 연휴였다.

6월 1일, 화산 모양의 거푸집에 석고를 부은 다음 굳혔다.
6월 2일, 어느 정도 굳은 석고 겉면에 검정, 빨강, 노랑 물감을 칠했다.
6월 3일, 대망의 화산 폭발 실험날. 이날 어린이용 화산 실험 키트뿐 아니라 세 식구 내면의 화산이 폭발하는 날일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다. 송이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고 나는 설명서를 수시로 보며 (몇 번 없을 기회일 테니) 최대한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모순된 목표에 사로잡혀 조심스레 용암 역할을 할 구연산, 탄산수소나트륨, 물을 준비했다. 모두 매뉴얼에 맞춰 정량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즐거운 장면을 영상으로 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이의 행동이 (내가 예상한) 매뉴얼을 벗어나면서부터 또 다른 용암이, 아니 문제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얕고 넓은 대야에 용암 모형을 뒀는데, 여기에 용암 느낌을 주는 빨간 색소와 온갖 화학물질과 물이 고여 있게 됐다. 이게 송이 눈에는 분명 더 재밌게 보였을 것이다. 송이가 그 물을 손으로 만지고 놀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뜸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애가 놀 때는 그냥 좀 내버려 둬’라고 늘 타이르던 아내의 말도 떠올랐다.

혼자서 이 장면들을 보다가 결국 내 선에서 파티를 일찍 끝내고 말았다.

“잠깐! 이거 더 이상 만지면 안 돼. 그만하자.”
“네, 저도 동의해요. 이 장난감 정말 재밌네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라고 5세 아이가 말할 리 없다.

송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아빠가 그만 놀라고 하니 심통이 났을 테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아내 표정도 활화산으로 변했다. 아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에휴… 그렇게 위험한 거였으면 놀이 전에, 미리 말했었어야지. 도중에 말하면 어떡해?” 맞다. 아내 말이 항상 옳다.

한없이 한적하고 평화롭던,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던 힐로의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했던 스티커 하나가 떠오른다. 화산을 모티브로 한 여러 디자인의 스티커가 있었는데, 그중 “LOVE YOUR VOLCANO”란 문구(아래 사진)가 인상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내에게 “이거 딱 당신 이야기네. 가끔씩 속에서 부글부글하잖아, 하하”라며 농담을 건넸는데, 그 스티커를 내가 사서 이마에라도 붙이고 다녔어야 했다. 반성한다.

고백하건대 내 안에도 분명 화산이 있다. 나는 언제 버튼이 눌릴까. 스스로 못 견디거나 싫어하는 건 뭘까. 이를테면 나에겐 위생 강박, 안전 강박 같은 게 있다.

부모가 되면서 내 안의 화산이 폭발하는 걸 경험하곤 한다. 아이와 같이 커가는 동안 앞으로 이런 해프닝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까. 나의 못난 모습은 가급적 덜 보이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내면의 화산을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겠다. 그래야 타인, 내 아이에게도 관대할 수 있으니까.

+ 참, 우여곡절 끝에 데려온 그 화산 실험 키트. 국내에서도 파는지 검색해 보니 이미 쿠*에서 (해외직구로) 팔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