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3.23 일요일 오후 9시)에 발송한 129화 레터의 제목과 부제목이 124화의 제목과 부제목으로 기재되었습니다. 이에 129화의 제목과 부제목으로 다시 작성하여 재발송 드립니다. 아래 본문 내용은 동일합니다. 레터 보시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해요. 앞으로는 더 꼼꼼히 확인하고 발송드리겠습니다! 🙇‍♂️

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이번 레터는 두 아이를 키우며 용돈 교육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은 정민님이 보냅니다. 님은 아이들에게 경제 관념을 가르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시도해보셨나요? AI 시대에 용돈 관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앞으로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다뤄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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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이란 걸 받기 시작한 건 6학년 때였다. 한 주에 천 원. 한 달에 4천 원. 당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셨던 엄마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가게 구석에 있던 투박한 회색빛 금고를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낮에 엄마 대신 가게 봐준 값이다’ 라면서. 

월요일 아침, 퇴계 이황 할아버지 얼굴이 그려진 분홍색 지폐를 호주머니에 넣고 학교에 가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천 원의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비록 천 원이었지만, 내가 사고 싶은 걸 사기엔 충분했다. 한두 주 모으면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는 큰 자유였다. 당시 동네에 처음 들어왔던 로손 편의점에 가서, 학교 친구들과 컵라면과 슬러시를 사먹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엄마의 가게는 새로 생긴 그 편의점 때문에 손님을 점점 뺏기고 몇 년 후 결국 문을 닫았지만.)  

“아빠, 나도 용돈 줘.” 

시간은 뭐 이리 쾌속인지, 정신 차리고 보니 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겨울, 6학년을 앞둔 아들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네, 이제 이 아이들도 스스로 돈 관리를 할 때가 되었네. 그런데 매주 천 원짜리 지폐를 바꿔줄 수도 없고,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21세기도 이미 사반세기가 지났는데? 

궁리를 조금 하다가 아이들 휴대폰에 토스 앱을 깔아주기로 했다. 금융 슈퍼앱이라는 별칭답게 토스는 미래 고객인 어린이들을 위한 서비스도 빠르게 개선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용돈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청소년용 카드인 토스 유스카드를 신청하고, 별도로 교통카드 기능을 연결해주었다. 며칠 후 집으로 카드가 도착했다. 각자 본인들이 원하는 흰색과 하늘색 카드를 받아든 아이들은 나도 이제 엄마아빠처럼 카드가 생겼다며 싱글벙글 신나 했다. 

자 이제는 얼마를 매달 용돈으로 보내줄 지 정할 차례. 법으로 정해진 건 없으니 아이들과 상의해서 정하면 될 일이었다. 고학년인 첫째는 월 3만 원으로 정했다. 늘 본인이 오빠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둘째는 실랑이 끝에 월 2만 원으로 하기로 했다. 막상 매월 5만 원을 은행 자동이체 등록하려고 보니 살짝 부담감이 생겼지만, 아이들이 매달 편의점에서 사달라고 보채는 과자와 아이스크림 값, 문방구 들러서 사달라는 자질구레한 문구류와 장난감 값을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퉁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합의를 보고, 매월 1일 아이들에게 용돈을 이체해주기 시작했다. 조건은 두 가지, 첫째, 받은 용돈의 절반은 무조건 저축할 것. 둘째, 앞으로 과자와 장난감은 엄마아빠에게 사달라고 하지 않고 각자 용돈으로 살 것.

어찌보면 매우 작은 실험같은 시도였기에, 내심 아이들이 어떻게 받은 제 용돈을 관리할 지 궁금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살펴보니, 용돈을 쓰는 스타일은 성격처럼 영 딴판이다. 분명 같은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인데. 

첫째는 돈을 잘 안 쓴다. 그러다보니 절반을 저축하고도 돈이 남는다. 친구들이랑 놀러 나가도 정작 제 돈은 안 쓰고 친구들에게 얻어먹는 편이다. (카드를 놓고 왔어… 라는 신공을 쓰는 것 같다.) 지난 설 명절에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도 고스란히 통장에 들어있다. 

둘째는? 플렉스주의자다. 1일에 이번 달 월급 아니 용돈이 들어오자 마자 친구와 나가더니 무인 문구점인 ‘문구야 놀자’에 가서 그야말로 플렉스를 하고 오셨다. 계좌에 남은 돈은 단돈 950원. 그러고는 며칠째 다음달 용돈 가불해달라며 우는 소리를 한다. 허허… 가불? 

“아빠, 나 언니들이랑 편의점 가서 뭐 사먹고 올게~”
“너 950원 있다면서?”
“엉, 돈 있어. 오빠가 토스로 돈 보내줬어~”
“정말?”

오빠는 무슨 죄냐 싶은데, 첫째는 또 세상 쿨하다. 자기는 돈 별로 필요 없어서 동생 보내줬단다. 매일 치고박고 싸우기만 하던 현실남매도 자라긴 자라는 걸까? 

‘오빠한테 받은 돈으로 친구들이랑 또 뭘 사먹으려고 나갔나… 아이스크림? 탕후루? 떡볶이?  햄버거?’ 

정작 돈 뜯긴 첫째는 무심한데 괜히 내가 흥청망청(!) 돈쓰는 둘째의 태도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이제 고작 2학년인데 용돈을 관리하는 건 역시 무리였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들어오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슬며시 고리눈을 뜨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 엄마랑 같이 있지? 여기 편의점 앞인데, 차로 데리러 와줘~” 

가뜩이나 주말에 운전수 노릇하기 힘든데 또 오라가라야 흥.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쩌겠나 이러나 저러나 내가 낳은 딸, 나의 애순이 금명인데. (아내는 요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푹 빠져있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애청자가 되었다.) 

차를 몰고 편의점 앞에 나왔더니, 아이가 손을 흔든다. 그런데 아이 손에 뭐가 들려 있다. 예쁜 하늘색 포장지로 감싼 노란 후리지아 꽃다발이다. 

“엄마 축하해~ 곧 엄마 생일이잖아.”
“아이고,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응, 오빠가 보내준 돈으로 샀어.”

편의점 옆 꽃집에서 이번 주 생일인 아내 꽃다발을 사온 것이다. 그러니까, 며칠동안 내게 다음 달 용돈을 가불해달라고 했을 때는 제딴엔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1차 계획에 실패하자 Plan B로 오빠에게 손을 벌린 거였다. 

무방비 상태에서 둘째의 애정 공세를 당한 아내는 이미 넉다운이다. 옆에서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이런 딸을 낳았네. 역시 딸이 남편보다 낫네 하며. 눈에서 하트가 나가는 게 보이는 것만 같다. 

열 살도 안된 딸 아직 돈 쓰는 법 모른다고 쓴소리나 하려던 아빠는? 그날 저녁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도맡아 했다는 후문.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아직 며칠 남았는데 이렇게 먼저 선빵을 날리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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