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났다. 정확히는 4개월 20일.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니 그전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까지 말하자면 레터가 너무 길어질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사실 레터에 쓸 글감을 아끼려는 얄팍한 속셈일지도..), 아이가 태어난 뒤의 일만 이야기해 보자. 그런데 사실 자신이 없다. 무슨 자신이 없느냐 하면 둘째를 키우면서 무슨 일이 있었고, 내 상태가 어떤지 레터에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왜 그런고 하니.. 자고로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할 손톱만큼의 여유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내와 나는 그저 아이들을 키우는데 대부분 정신이 팔려 있다. 육아휴직 중인 아내는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다. 애초에 SNS도 잘 하지 않거니와 본인의 카톡에도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두룩 빽빽인 경우가 많은 사람인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외부와의 교류나 바깥나들이 자체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상황이 조금 나으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아이를 챙기고 상황에 따라 나 또는 아내가 첫째를 집 근처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내가 등원시키는 날에는 아이를 데려다 주고 집 앞에 주차해둔 차를 운전해 집 근처 사무실로 이동한다. 12월에 이사하면서 집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두었다. 그동안 사무실을 쓴 적은 있지만, 대부분이 공유 오피스였어서, 개인 사무실은 처음 가져본 셈이다. 개인 사무실을 얻었다니 조금 있어 보일 수도 있는데 실상은 다르다. 집을 줄여서 이사하다 보니 내가 일할 공간, 집에 있던 책과 화이트 보드 등을 둘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구한 공간이다. 서울 도심에서 구하는 비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 어찌 됐건 그곳에서 일을 한다. 저녁에는 최대한 6시에 맞춰 퇴근한다. 집까지는 차로 10분 남짓. 새로 이사한 집은 14층인데 매번 퇴근할 때마다 14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는 정작 실행은 2번뿐이었다. 걸어 올라가려다가도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지 하는 마음에 급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얼굴이 참 하얗다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가 있는데, 내가 집에 가야 아내가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면 대체로 아내는 1~2시간쯤 전에 하원 한 첫째의 저녁을 먹이고 있다. 그나마 둘째의 저녁 마지막 수유가 첫째의 저녁 식사 시간과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아내와 내가 먹을 저녁 준비를 한다. 최대한 빨리 저녁을 차려 먹어야 첫째를 씻기고 저녁 8시 30분에 데리고 들어가서 재울 수 있다. 내가 늦게 귀가해서 부부의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첫째의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저녁을 먹고 아내가 첫째를 씻기고 재우는 동안(내가 재우고 싶어도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 우리 부부는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가 잠이 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거나 수다를 떨거나 아이와 놀아주고 한다. 첫째는 참 신기한 게 책 읽는 건 나한테 시키고 꼭 잠은 엄마한테 재워달라고 한다..) 나는 거실에서 둘째를 재운다. 둘째가 귀가 예민하다 보니 첫째와 재우는 건 달리 재우고 잠이 들면 그제야 다 같이 자는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식이다.

대충 하루의 일과가 이렇다 보니 내 일과는 아침 9~10시 사이에 출근, 저녁 6시 퇴근이다. 작년 12월부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있는 첫째 아이의 문화센터 참석을 책임졌다. 매주 금요일은 오후 4시 퇴근을 했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녁 약속은 사치에 가깝고(그래서 낮술을 하기도..) 점심 약속도 1주일에 한 건만 잡는다. 안 그러면 아이를 볼 시간도, 일 할 시간도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저 집은 그래도 먹고 살만한가 보다’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한 지 6개월이 지나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나는 프리랜서이므로 하루하루가 고비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어찌 저찌 먹고 살만큼은 벌고 있고 아이를 키우며 살 정도는 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자도 아닌데 어찌 아이 둘을 낳았느냐고 하신다면 이 내용 역시 다음번 언젠가 쓸 레터 소재로 남겨두기로 하겠다.ㅎ)

둘째가 태어나면 아이를 하나 키울 때보다 2배로 힘든 게 아니라 3~4배쯤 힘들다는 말이 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멤버 중 한 명도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왜냐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둘이 되어보니 부모는 대체로 둘 다 쉴 수 없다. 무슨 말이냐면 제 앞가림 못하는 아이가 둘이니 앞가림을 대신 해주어야 하는 사람도 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두 아이가 동시에 울어 제낀 적이 있는데 정말 헛웃음만 나오는 상황이 된다. 양쪽에서 돌비 서라운드 저리 가라 할 퀄리티로 울어주는데 이건 뭐.. 

물론 첫째가 유치원에 가 있다던가, 둘째가 자고 있다던가 하는 순간이 되면 조금 나은 상황이다.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아이가 하나 집에 없다고 또는 잔다고 해서 부모가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밀려 있는 빨래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소파에 누워서 밀린 유튜브 없느냐 하면 봐야 한다. 얼마 전 첫째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맘때의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알겠지만, 부모가 시간을 써야 할 일이 많다. 오티도 가야 하고 원에서 왕창 보내준 아이 준비물도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이다. 유치원을 정하긴 했는데 이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동네 유치원들을 샅샅이 뒤져서 후기도 살펴봤다가, 결국 내가 보내기로 한 곳이 그나마 낫구나 하며 낭비한 시간들을 합리화한다. 

얼마 전 첫째가 어린이집 수료 전 마지막 방학 기간을 맞이했다. 신의 은총이 있었는지 장인, 장모님께서 당신들 집에 아이를 며칠 맡기면 어떻겠냐 하셨다. 너무나 감사하고 들뜬 마음을 안고 첫째를 맡겨 놓고 둘째와 우리 부부만 지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와우.. 아이 하나, 그것도 아직 유아차에 누워만 있는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발로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것은 관용구이기도 하지만 실제이기도 했다. 아내와 회전초밥집에 들러 밥을 먹다가 보채는 둘째가 누워 있던 유모차를 발로 왔다 갔다 하며 밥을 먹기도 했으니…

그래서 다시 ‘아이 둘 키우는 건 정말 힘드냐’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잘 모르겠다’는 거다. 첫째가 처가댁에 가 있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조금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 저녁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씻기지 않아도 되고 재우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런데 결국 이러한 힘듦은 ‘아이’라는 존재 덕분에 상쇄되어 버린다. 아이가 없으면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는 기쁨, 아이를 씻기는 기쁨, 아이를 재우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둘째가 없었다면 둘째가 흘리는 침 냄새도 맡지 못할 것이고, 두 아이를 양쪽에 안을 때 느끼는 충만함과 벅참을 느낄 수도 없다. 첫째가 우는 둘째 옆으로 가 토닥이며 ‘이솔아 괜찮아. 이솔아 괜찮아’라며 달래주거나, 자러 들어가기 전에 ‘이솔아 잘자’라며 인사해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뭉클하고 애틋한, 일명 ‘이러려고 애 둘 낳았지’ 장면인 것이다. 

일명 '이러려고 애 둘 낳았지' 장면 중 하나

아들 둘을 키우는 미래의 모습도 그려본다. 분명히 3~4년 뒤면 두 아이는 서로 뒤엉켜 놀다 싸우다 울다 껴안고 잠들 것이다. 우리는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닐 것이고 아마도 차는 카니발로 바꾸겠지. 조금 더 크면 땀 냄새 풀풀 나고 여드름도 좀 나고 반항도 하는 나이가 될 것이다. 또 조금 더 크면 수험생티를 내며 자기들 엄마나 나와 티격태격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일 거라 믿는다.

먼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당장 우리 집 안방에 누워있는 저 두 아이를 보는 것 그 자체로 행복이고 기쁨이다. 아이가 하나일 때도 좋았지만 둘일 때도 좋다. 너무 좋다. 그래서 이따금 생각해본다. 셋째는 어떨까..?

Illustration by 김파카(@kimp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