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이 드디어 끝을 보이고 있어요. 님에게 3월은 어떤 느낌인가요? 이번 편지는 유치원 입학을 앞둔 송이 아빠 현 님이 보내요. 며칠 전, 송이를 데리고 전에 살던 동네에 다시 가 봤다고 하네요. (2년 전 정우 님이 보낸 편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으니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어요.)

내가 말했다. 이번에도 아이들의 반응은 시크한 반면, 양육자가 더 반가워했다. 송이와 수호는 서로의 얼굴이 변한 것 같다고 인사(?)하며, 각자 놀이터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또 따로 놀았다. 우리는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좀 더 날이 풀리면 북촌으로 놀러 오시라는 인사를 나누며 다시 헤어졌다. 20분을 운전해 북촌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오후의 짧은 외출을 마쳤다. 그날 송이는 흡족한 회장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게 연락을 해 봐야 돼. 시간 되면 만날 수도 있고, 안 되면 못 보는 거지.”

지난 한 달 동안, 남양주 어느 학원에서 예비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해력 특강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일기 쓰는 걸 숙제로 냈다. 일기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또는 아파트 단지 안 게스트하우스에 모여 밤늦게까지 논 에피소드가 등장하곤 했다. 이들의 하루는 방학이 무색하게 오전부터 오후까지 학원 스케줄로 빼곡했지만, 막상 일기에 학원이 등장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친구는 공부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였다.

한 번은 동네 카페에서 어른 대여섯 명이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테이블에 앉은 풍경을 본 적도 있다. 어른끼리 수다를 떠는 가운데, 아이 혼자 비스듬히 세워진 스마트폰 앞에 멍하니 앉은 모습을 보면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송이도 또래 친구와 노는 걸 가장 좋아한다. 아무리 주말 내내 아내와 나, 또는 다른 어른들(주로 우리의 친구들이다)과 놀아도 송이가 자기 친구랑 놀 때의 표정과 들뜸을 따라갈 순 없다. 저녁에 잠들 무렵, “나 오늘 하나도 못 놀았잖아. 심심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나이를 떠나 친구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며칠 전, 유치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온 가족이 함께 갔다. 아이들이 1시간가량 원에 적응하는 동안, 다른 공간에서는 양육자끼리 모여 입학을 축하하는 카드를 작성하며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뿐 아니라 양육자도 긴장한 모습이었는데, 유치원 원장의 말 한마디가 공기를 따뜻하게 했다.

“지금은 이 모든 공간과 시간이 낯설겠지만, 아이들 졸업 즈음이 되면 다들 아쉬워할 정도로 정들고 좋은 추억을 쌓으실 거예요. 여기 모이신 엄마, 아빠들끼리 서로 얼굴도 익히며 인사하세요. 가끔 부모들끼리도 평생의 친구가 되더라고요.”

어릴 적 나는 3월이 유독 싫었다. 지난 1년 동안 겨우 친구를 사귀었는데, 헤어지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다른 친구를 사귀는 게 버거웠던 것 같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아이 눈높이에서 다시 새 학기를 간접 경험하니 그 시절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하다.

나이가 들면서 능청스러워진 걸까. 싫은 감정보다는 반갑고 벅찬 기분이 든다. 올해 송이는 어떤 친구들을 사귀게 될까. 아내와 나는 송이 덕분에 어떤 양육자와 어울리게 될까. 아직 이름도, 얼굴도 낯설지만, 기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새싹 같은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신 보육기관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