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직전 금요일, 둘째 아이가 백일을 맞이했다. 주말에는 하루씩 양가 식구들과 백일 행사를 치렀다. 둘째 아이가 벌써 백일이라니.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흐른다. 100일 전에 겪었던 아이의 출산이 전생에서의 일 같다고 하면 과장이려나. 바쁜 와중에서도 한가지 다행인 것은 아내와 나 모두 경력직이라는 점이다. 3년 넘게 첫째를 키워본, 육아 경력직의 짬(에서 오는)바(이브)에서 오는 여유 덕에 둘째는 그래도 조금 덜 힘들게 키운 것 같다.

육아 경력직이라지만 당장 둘째 아이를 마주했을 때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내 팔뚝만한 아이를 안아 보는 건 40개월 만의 일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는 오줌 세례를 맞기도 했다. 아이가 원래 입고 있던 기저귀를 벗기기 전에 새 기저귀를 아이 엉덩이 밑에 깔았어야 했다. ‘기저귀 가는 일쯤이야’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새 기저귀를 대 놓지 않고 벗겼는데 그새를 못 참고 아이가 소변을 본 것이다.

아이 목욕도 새로웠다. 첫째 때는 아내와 둘이 아이 목욕법을 배웠다. 이번에 이용한 산후조리원에서는 남편에게는 따로 목욕 교육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남성의 육아 참여가 높아져야 하는 세상에서 남성에게는 목욕법도 알려주지 않는다니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산후조리원에서는 신경 쓸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유튜브에서 검색해 아기 목욕법을 찾아봤고 집에 와서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씻겼다. 옛 기억을 떠올려보며 더듬더듬.

둘째의 성별이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도 아내를 똑 닮은 딸.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첫째는 날 똑 닮은 아들이었기에 둘째는 아내의 유전자를 듬뿍 받은 다른 성별의 아이로 태어나면 더욱 풍성한 가족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둘째를 직접 마주하고 어리바리 하는 자신을 보고 있자니 둘째 아이가 아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엄마를 똑 닮기는 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신생아 육아에 적응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성별까지 첫째와 달랐으면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되면 '경력직의 위엄'이 아니라 '경력직이 위험'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겠다 싶겠지만, 그래도 경력직은 경력직이다. 자전거는 한번 배워두면 오랜만에 타도 금세 적응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조금 서툴었지만, 아이를 안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목욕도 금세 익숙해졌다. 그렇다. 자전거 타기처럼 육아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다.

짬바에서 오는 경력직의 위엄이 무엇일까 떠올려본다면 그건 바로 멘탈일 것이다. 첫째를 키워봐서인지 둘째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실제로는 당황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첫째를 키우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해주는 말이 있었다. ‘울다가 잘못되는 아이 없다’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이런 영상도 있다 ㅎㅎ) 조금은 과격하지만 일견 이해가 가는 말이다. 아이가 운다고 당황할 것이 아니라 왜 우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보통 아이들은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에 불만이 있을 때 운다. 즉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기저귀가 찰 때 운다. 물론 아플 때도 울지만, 대체로는 이 세 가지가 이유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아이가 운다고 크게 걱정하거나 허둥대지 않으려고 한다. 첫째 때도 그랬다. 아이가 울면 당황하기보다는 ‘무엇이 불편한 걸까?’ 고민했다. 물론 아이가 하나라면 위에 이야기한 불편함이 무엇인지 바로 살펴주면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하나 더 있다. 첫째는 지금은 제법 커서 자기 생각도 뚜렷하게 전달하고 자기 할 일도 스스로 해내는 편이지만 여전히 부모의 손이 필요하다. 첫째를 돌봐주다가 둘째가 울면 바로 달려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이가 울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둘째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울고 보챈다고 바로 달래주지 못한다고 하니 성의없는 부모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게 아이 둘 있는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일 텐데. 두 아이에게 동시에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을 부모가 미안해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얼마나 즉각적으로 아이에게 달려갈 것인가 보다는 얼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이에게 밸런스 있는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려 한다. 다행히 둘째 아이는 100일 동안 아픈 곳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두 아이에게 (위급 상황을 제외하고) 즉각적이진 못해도 오래도록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며 키우려 한다. 육아에 정답은 없으니 우리 부부만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둘째가 조금 더 크면 육아의 스펙타클함과 다이나믹함은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하게 커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육아 경력직의 짬바를 발휘할 것이다. '경력직의 위엄'이 '경력직이 위험'이 되지 않도록.

Illustration by 김파카(@kimp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