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평소에 말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많이 들으시는 편인가요? ‘대화’란 일상생활에서 두 사람이 모여 말로 생각한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활동을 말한다고 해요. 말은 입이 트이는 아이들도 할 수 있는데, 막상 대화는 성인이 되어서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이번 레터는 어떻게 하면 대화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인 43개월 송이 아빠 현 님이 썼어요.

📍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조례나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 및 운영 조례처럼 양육자에게 도움 되는 정책을 정치인에게 역제안하는 '역공약' 페이지가 열렸대요. 관련 소식을 뉴웨이즈와 함께 준비했어요. 레터 마지막에 적힌 내용을 보시고 다른 동네에 있는 좋은 정책, 우리 동네에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세요.

‘아, 내 안에 화가 있었구나!’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수행이란 “화가 나면 화가 났음을 알아차리고, 화를 냈다면 사과하는 것. 다시 폭발한다면 ‘아! 스트레스가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는데 일상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화를 내기 전에 ‘화가 났음’을 미리 알아차리니 사르르 그 감정이 사라졌다.

그렇게 이번 생은 나도 성불(成佛)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수행이 부족했다. 지난 10월, 아내와 또 다투고 말았다. 한 번은 아내가 나에게, 5일 뒤에는 내가 아내에게 불만을 표했다. 부끄럽게도 날씨 좋은 10월 중 절반가량을 냉랭한 분위기로 보냈다. 부부싸움 때문에 애꿎은 송이가 피해를 봤다.

기왕 이 이야기를 꺼낸 김에 당시 상황을 좀 더 적어보겠다.

10월 14일(월) 아내의 공격
오전 8시에 테니스 레슨이 있어 아내에게 송이 등원을 부탁하고 먼저 집을 나섰다. 레슨을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 향긋한 모닝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아내였다.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온도는 갓 내린 커피보다 뜨거웠다. 설거지도 안 해놓고 레슨 받으러 먼저 집을 나선 나 때문에 아내는 화가 났다. ‘주말에 이미 청소, 빨래 등 대부분의 집안일을 해놓은 터라 설거지 정도는 본인이 하겠지‘라고 생각한 게 나의 실수랄까.

같은 날, (넷플릭스의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며 화제를 모은) 안성재 셰프의 인터뷰가 롱블랙에 발행됐다. 그는 2024년 기준, 국내 유일의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 서울’의 오너셰프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지금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설거지가 내 일이면 설거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 열정은 없어도 돼요. 있다가도 없는 게 열정이라 생각해요. 진정성이 없고, 마음이 앞설 때 쓰기 쉬운 말이 열정이죠. 경력도 기술도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됐든 진정성 있게 요리에 임하는 사람이 좋은 요리사라고 생각해요.”
— 안성재, 롱블랙 노트 중 (2024년 10월 14일, 인터뷰어: 차승희)

10월 19일(토) 나의 반격
“언제까지 식탁 앞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을 거야?”

이번에는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송이랑 셋이서 다 같이 아침을 먹던 중이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수시로 휴대폰을 봐야 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주말 오전이었다. 이날 역시 ‘아! 스트레스가 있었구나!’라고 먼저 생각했어야 했는데, 화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동안 참아온 화가 터졌으니 목소리가 곱게 나갔을 리 없다. 아내의 얼굴이 굳었다.

“그걸 꼭 지금 송이 앞에서 말해야겠어? 우리 송이 앞에서는 다투지 않기로 했잖아?”

아내 말은 늘 옳다. 하지만 ‘또 이대로 당할 순 없다’는 쪼잔한 심보였을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당신이 예전에 정한 규칙이잖아. 나한테 송이 앞에서는 가급적 휴대폰 보지 말자고 했잖아. 본인이 말해놓고 계속 어기면 어떡해?”

각자 하고픈 말만 하니 대화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아내는 오전에 개인 일정이 있었는데 송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텅 빈 집에 있다가 설거지를 마무리 짓고 지저분해진 집안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갔다. 나도 오후에는 개인 일정이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소홀히 한 집안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는 모습이 싫었지만, 다툼은 다툼이고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1. 주말 중 하루는 송이가 원하는 대로 다 같이 논다.
2. 가족끼리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3. 다시는 송이 보는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급적 원만한 대화로 해결한다.)

우리 동네 문제 해결 플랫폼, 뉴웨이즈 피드에서 정치인에게 원하는 정책을 역제안하는 ‘역공약’ 페이지를 열었어요. 정치인에게 여러분이 진짜로 필요한 게 뭔지 직접 알려주세요. 벌써 많은 지역에서 아빠 육아 휴직 장려금, 공공 산후 조리원 등을 검토하겠다고 응답이 왔어요. 서대문구는 주말, 야간에도 여는 소아과를 검토하기로 했고요. 관악구도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을 고민하고 있대요.더 많은 요구가 모이면 더 빨리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양육자에게 도움 되는 정책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면, 역공약에 참여하고 주변에도 공유해 주세요.

💬 기다림이라는 것 정말 이번 레터 읽으면서 완전 정말 다르게 느꼈네요. 저도 평소에 안전을 위해 뭐를 위해 기다려 아빠 지금 뭐하고 있으니깐, 이란말을 어쩌면 생각없이 급한 맘에 던졌었는데, 아이는 생각해보니 계속 아빠를 엄마를 기다려주었던 것 같아요. 아이에게 필요한건 기다려주는 인내심 한개만 있어도 잘 성장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치 못한 기다려!들이 있었네요. 내일 등/하교부터라도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다시해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이아빠)

💬 저라면 그 대답 듣는 순간 눈물 났을꺼 같아요 ㅠㅠㅠㅠ (유키농)

💬 나보다 어쩌면 더 기다림을 잘 알고 있는 22개월 아들을 생각하며, 이번 레터를 다시 곱씹어 읽게 됩니다. 매일 아침, 먼저 갈 준비를 마친 아이는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 엄마를 현관에서 기다립니다. 각자 9-6의 삶을 살고 난 이후, 먼저 집에 돌아온 아이는 하원 선생님과 함께 정해지지 않은 엄마의 퇴근 시간을 기다립니다. 시간이 늦어질때마다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현관문 소리만 듣고 엄마를 외치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들이 그저 고맙고 미안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시간도 길게만 느껴질 작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서 안아주고 손을 잡아줄 수 있도록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카이)

💬 이현이가 말하는 기다림의 정의는 어른이 보기에도 마음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정확하네요. 어른들이 마치 다 아는 것 같이 아이를 바라보지만 아이는 아이가 경험한 삶과 세상을 바탕으로 꽤 정확하게 감정과 단어를 표현할 줄 아는 것에 감탄했어요 🥹 (이세미)

💬 너무 좋은 글입니다. 후루룩 읽다 잠시 마우스 스크롤을 멈췄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익명)

Illustration by 김파카(@kimp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