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오뚜기에서 메일이 왔다.

“저희와 함께 아빠들의 새로운 카레 이야기를 만들어 보시면 어떨지 제안드립니다.”
— 2023년 5월 11일에 받은 메일 중

몇 번의 통화와 메일, 미팅을 거쳐 온라인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는 걸로 결정됐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면, 아이와 함께 카레 요리를 만드는 컨셉이다. 메인 진행은 신효섭 셰프가 맡고, 우리가 보조하는 식이다. 지난 7월에는 혁진 님이 호스트로, 9월에는 내가 호스트로 참여했다.

그런데 오뚜기가 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랑? 두 번의 쿠킹 클래스를 마치고, 뒤늦게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레터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잠시 오뚜기 이야기부터. 1969년에 창립된 오뚜기는 첫 제품으로 카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는 이미 일본에서 만든 카레 제품이 주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뚜기의 첫 제품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가 출시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오뚜기 카레는 출시 1년 만에 경쟁사를 압도하며 시장 판도를 바꿨고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 브랜드가 됐다.

말이 쉽지, 어떻게 첫 제품만으로 판을 바꿨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오뚜기 카레의 CM송을 언급하고 싶다. 실제로 오뚜기는 1970년대 CM송을 활용한 광고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와 쉬운 가사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오뚜기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일요일’과 ‘카레’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지만, 무의식 중에 일요일에는 오뚜기 카레를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뚜기는 초기 시장 정착을 위해 당시 월, 수, 금요일 어린이 시간에 TV광고를 실시하고, 일요일은 보다 집중적인 광고를 집행했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라는 CM송은 최근까지도 인기를 누렸다. 또, 광고를 보고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철저한 루트 세일(route sale)*로 어디서나 쉽게 오뚜기 제품을 살 수 있도록 시장확대에 나섰다.” (조선경제 기사, 2008.5.20.)

* 영업사원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진열을 돕고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등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는 방식.

다시 썬데이 파더스 클럽 이야기로. 썬데이 파더스 클럽과 오뚜기 카레에도 연결 고리는 딱히 없다. 다만, 한 가지 접점이 있었다. 일요일에는 오뚜기 카레를 먹어야 할 것 같고, 우리는 일요일 저녁에 육아 레터를 보낸다. 이럴 땐, 뉴스레터 이름을 썬데이로 지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그럼 이제 쿠킹 클래스로 넘어가자. 9월의 오랜만(오키친*과 랜선에서 만나요) 키친에서 함께 만든 메뉴는 두 개였다. (레시피는 메일 하단에 넣었다.)

1. 과일 참치 구슬초밥
2. 몽글몽글 달걀 카레라이스

두 달 전, 이곳의 쿠킹클래스를 송이랑 집에서 줌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셰프와 직접 호흡을 맞추고 대본을 살피며 진행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날만큼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텐션을 높여야 했고, 참여하신 분들의 진도를 살피며 요리를 함께 완성해 나가야 했다.

* 오뚜기에서 운영하는 쿠킹 경험 공간.

줌 화면 너머로 아빠와 아이들이 같이 요리하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는데(물론 엄마랑 참여한 팀도 있었다), 그 모습이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아서 좋았다. 그중 한 아빠는 중식도(中食刀)로 보이는 식칼로 식재료를 다듬으며 요리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쿠킹 클래스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집중하며 잘 따라와 줘서 기특하면서도 고마웠다. 서로 음식을 완성한 접시를 카메라에 비출 때는 뿌듯한 미소도 감추지 않았다.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을 쓴 홍성태 교수는 브랜딩의 핵심으로 인셉션(inception)을 꼽았다. 즉, “브랜드의 의미를 소비자의 머릿속에 심어 주어 고착개념화하는 것”이다. 막상 이런 류의 일을 하는 나로서는, 인셉션이 매우 어렵다는 걸 느낀다. 브랜드 경험과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는 게 중요한데, 이것부터가 쉽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외 환경을 떠나 내부에서는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유혹이 크다. 매번 같은 메시지를 발신하다 보면 실무자 입장에서 착각에 빠질 때도 많기 때문이다. 고객이 그 메시지를 이제 지겨워할 거라는 착각이다. 정작 현실에서는 그 메시지가 닿지 않았을 확률이 높은 데도 말이다.

이번 쿠킹 클래스 협업은 단순히 아빠로서의 참여를 넘어, 오뚜기가 어떻게 브랜드 경험을 일관되게 전하려고 노력하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뚜기는 이제 카레만 팔지 않아도, 굳이 일요일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사가 커졌지만 여전히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육아의 초심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부끄럽지만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 송이의 끼니를 제대로 챙긴 적이 드물다.

어느덧 밤바람이 선선한 계절이다.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안방에서 잔다. 가끔 내가 새벽에 깨거나, 송이보다 먼저 일어나는 때면, 딸이 잠든 모습을 본다. 송이가 매번 이불을 걷어 차지만, 혹여나 춥지는 않을지 다시 덮어주기도 하고 송이 발바닥도 괜히 만져 본다. 인생 30개월 차에 접어든 송이 발바닥은 아직 한 손에 들어온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 여전히 한 손에 잡혀 안도하게 된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온기가 무선 충전하듯, 내 마음을 몽글몽글 데워준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는 잠시 잊자. 대신 어느 요일이든, 재료를 준비하여 송이에게 과일 참치 구슬초밥과 몽글몽글 계란 카레라이스를 해줘야겠다. 마침 쿠킹 클래스 때 신효섭 셰프가 내게 물어보셨다.

“송이 아빠, 평소에도 요리하시나요?”

“네, 가끔요.”

그가 다시 말했다.

“요리를 한 번만 하시면 안 돼요. 자주, 수시로 해 주세요. 분명 송이가 좋아할 거예요.”

[=몽글몽글 달걀 카레라이스]
1. 양파는 얇게 채 썰고, 대파는 얇게 어슷 썬다. 자숙 알새우는 흐르는 물에 가볍게 헹구어 준비한다.
2. 빈 볼에 달걀을 깬 후 미향을 넣고 섞는다. (미향은 고개 잡내 제거를 원할 경우 선택적으로 추가 가능)
3. 중불에 맞춰 예열한 깊이감이 있는 팬에 식용유를 적당히 두르고, 채 썬 양파와 자숙 알새우를 넣어 2분간 볶는다.
4. 3에 물과 옛날 자른다시마를 넣고 3분간 끓인다.
5. 옛날 자른다시마를 건져낸 다음 오뚜기카레를 넣고 2분간 끓인다. (아이들이 먹는 걸로는 순한맛 추천)
6. 5에 2를 풀어 넣고 3~4번 저은 후 5분간 끓여 마무리한다.
7. 고슬고슬된밥을 전자레인지에 조리 후, 그릇에 담고 6과 어슷 썬 대파를 올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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