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캐나다에서 온 편지] 이번 레터는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종일 함께 있는 정우님이 보냅니다. 아이가 아빠에게 다가와 한 말 한 마디가 아빠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데요. 아이와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정우님을 부끄럽게 한 아이의 한 마디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볼까요?

Fathers’ Event

정우님의 레터 읽기 전에 님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 하나 확인해보실래요? ^^

[수선집 X 썬파클] 북스테이 이벤트를 소개합니다.

• 모집 기간 : 9월 10일(일)~9월 17일(일)
• 참여 대상 : 썬데이파더스클럽 뉴스레터 구독자
• 당첨 인원 : 총 2명
• 제공 혜택 : 북스테이 수선집 (지도보기) 1박 이용권 (2인실 독채, 음료, 심야책방 이용료 등 14만원 상당)
• 스테이 기간 : 10월 9일~11월 16일 평일(월~목) 중 선택
• 신청 방법 : 신청 폼에 응모(모든 항목에 대답을 해야 정상적으로 접수됩니다)
  * 선착순으로 사연 응모하신 150명에게 올드타운스쾃팅 축제 입장권(1인 2매, 총 2만원 상당)을 드립니다!!
• 당첨자 발표 : 9월 19일(화) 19시, 신청 폼에 입력한 연락처로 수선집에서 개별 연락 

노라 존스 노래가 들린다. 돈 노 와이. 반가운 마음에 눈을 감는다. 그런데 이 노래가 원래 이렇게 빨랐었나? 단어 하나하나를 늘어트리면서 가사를 노래했던 것 같은데. 유튜브를 2배속으로 본 영향인가 싶어 재생속도를 보니 정상이다. 노래는 그대로일 텐데. 변한 게 있다면 노래를 듣고 있는 나겠지? 찾아보니 이 노래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다.

두 달여 전 몬트리올에 처음 도착한 날. 공항에는 어학원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직원이 몰고 온 미니밴에 올랐다. 공항을 출발해 얼마 안 가 도시 외곽부터 양방향으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묻기도 전에 직원은 지금이 퇴근 시간 러시아워라고 했다. 시계를 봤다. 오후 두세 시 쯤 되었던 것 같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충 이 시간부터 도로 위에 차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왠지 이곳에서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새로 들어갈 학교와 교육청에 입학 신청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 이미 학사일정은 8월 말에 시작되어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아내가 전화했다.

“안녕, 어때?”

“안녕, 좋아. 무슨 일이야?

“몇 주 전에 서류를 냈는데 연락이 없어서”

“그랬구나. 원래 시간이 좀 걸려”

“얼마나 걸릴까?”

“글쎄 한 4~5주?”

시간이 지나면 다 어련히 될 텐데 무얼 그리 걱정하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좀’의 범위가 4~5일이어도 당혹스러웠겠지만, 다행히 우리도 급할 게 없어서 수긍하기로 했다. 아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니 우리나라에 있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먹고 두세 시간이 지나면 점심. 이대로 있다간 종일 집밖에 나가지 않겠다 싶어 어설프게 근처 공원이나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을 간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고 빈둥거리다가 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반복. 

이쯤되면 안 하던 짓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랩탑을 열어 회사 메일을 확인해본다. 휴직 중 [받은 편지함]의 ‘읽지 않은 메일’ 개수가 차곡차곡 쌓인 걸 보고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한숨을 한 번 쉬고 랩탑을 덮는다.

종일 다섯이 함께 있다 보니 끼니 걱정을 거를 틈이 없다. 별도로 부과되는 세금과 거기에 더해지는 팁까지 생각하면 외식이나 배달음식은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결국 음식은 나와 아내가 준비해서 해결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코스트코나 월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여기 대형마트는 주차타워도 없고 안에 매장을 몇 개 층으로 나누지도 않는다. 모든 게 대체로 평면적이다. 우리나라의 비공식 면적 측량 기준 중 하나인 여의도 면적과 비교하기는 어렵겠고 축구장 두세 개 정도 크기는 될 것 같은 단층의 매장을 아내와 나는 각각 카트를 한 개씩 밀면서 돈다. 흡사 원시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간 모습이다. 주로 나의 카트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거나 매달려 있는 채로 전자제품이나 장난감 아니면 군것질거리 진열대 근처를 배회한다. 그 사이 아내는 부지런히 이쪽저쪽을 돌아다니면서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부지런하게 카트에 담는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현관 앞에 음식재료가 와있는 삶을 살았다. 지금의 생활이 수렵채집사회라면 몇 주 전의 한국은 농경사회 쯤 되었을까. 전기밥솥을 구입해 솥밥에서 벗어난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아이가 셋이라서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하나의 점이 두 개가 되어 선을 이루고 거기에 하나가 더해져 면이 되었다. 삼각형에서 느껴지는, 대단히 주관적이고 막연한 안정감 같은 것이 있다. 이제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고 밥을 먹여주지 않아도 된다. 저희끼리 적당히 같이 놀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셋이 같이 레고로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흉내 내기도 하고 마인크래프트 책을 읽기도 하고 마인크래프트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유튜브로 남이 하는 마인크래프트를 보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 지옥 ㄷㄷ).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 건 동네수영장에 갔을 때다. 아이들을 씻겨 수영장 안에 들여보냈다. 보통 때면 같이 들어가 놀았겠지만 얼마 전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도 같이 살짝 썰어버린(?) 바람에 이날은 들어가지 못했다. 수영장에서도 아이들은 셋이서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가 큰 아이가 내 근처로 와서 물었다. 

“아빠는 안 들어와? 아빠도 같이 놀면 좋은데”

순간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들과 어디를 놀러 갈지, 다음 끼니를 어떻게 때울지, 떨어져 가는 손 세정제는 어디서 주문해야할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온 아이를 밀어낼 만큼 급하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나는 아이가 셋이라는 안정감에 취해 마치 벼랑 끝에서 자식을 밑으로 밀어내버리는 짐승처럼 매몰차게 아이를 밀어내었던 건 아닐까. 눈은 그깟 스마트폰에서 떼지 못한 채.

육아휴직을 ‘왜’ 하게 되었는지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20년이 더 흐르면 '내가 왜 너의 옆에 있지 못했는지 나도 모르겠다(I don’t know why I didn’t come)'는 노라 존스의 노래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더는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와 어떤 아이템 몇 개와 어떤 아이템 몇 개를 조합하면 어떤 아이템으로 강화되는지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너무 늦게 내려놓으면 벌써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을 지도 모른다.

느리게 흘러가는 지금 이 시간을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보내야겠다. 

(그래도 학교는 얼른 다녔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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