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중. 지하철역에 곧 도착한다. 휴대폰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긴급재난문자다. 지하철역 안에서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송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서울특별시] 오늘 오전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창한 5월의 마지막 날, 출근길 아침 6시 41분이었다. 문자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런 종류의 문자는 처음이었다. 경계경보가 발령된 지 9분이나 지나 이 사실을 알려준다고? 이유도 안 알려주고? 이럴 땐 트위터에서 소식을 확인하는 게 제일 빠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이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인공위성)를 발사했다는 속보를 발견했다.

‘이 상황에 출근하는 게 맞을까. 아니야, 인공위성이라고 했잖아. 설마 서울로 미사일을 쐈겠어. 일단 회사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자.’ 오만가지 생각 끝에 지하철을 타고 남쪽 방향으로 내려갔다. 우주발사체를 남쪽으로 쏘든 말든, 관성대로 출근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지하철에는 나처럼 슬픈 무리가 더 있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실제 상황이 아니길 바라면서. 선릉역에 도착할 무렵, 경보음이 한 번 더 울렸다. 오전 7시 3분이었다.

“[행정안전부] 06:41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한임을 알려드림”

사람들의 입에서 안도와 욕이 동시에 나왔다. 나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나중에 기사를 찾아보니, 원래 북한이 6월 중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걸 5월 31일에 강행*한 게 의외이긴 했다. 서울시의 경계경보 오발령도 이날의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미사일 한 점 없는 상쾌한 아침.”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한 줄은 120차례나 리트윗 됐다.

* 자세한 내용은 2023년 북한 천리마-1 발사 사건 참고.

20여 분만에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퇴근 후 송이와 수박을 먹고, 송이를 씻기고 재우면서 괴로운 상상을 했다.

• 전쟁이나 피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가족이 각각 헤어지면 어떡하지?
• 아이를 잃어버릴 때 당장 취해야 하는 행동은 뭘까?
• 한동안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내 삶에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상상이다. 괴롭더라도 대처요령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5월 25일은 실종아동의 날이었다. 서울 망원한강공원에서 진행된 장기 실종아동 프로젝트 ‘Project 871’에 관한 소식을 접한 기억도 떠올랐다. 871이란 숫자는 2022년 5월 기준으로 1년 이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기 실종아동의 수라고 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이 아님에도 이런 비극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소셜 크리에이티브팀 ‘3355 콜렉티브’의 자료에 따르면 실종아동 가족의 인터뷰에서 가장 반복되는 표현은 ‘시간’이라고 한다. 이들은 고립된 시간을 871개의 풍선으로 만들어 참여 시민들에게 나누며 실종아동과 가족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자 했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췄어요.”

“시간이 갈수록 그날의 기억, 내 아이의 모습이 더 진해진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그 시간에 머물러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든다.”

“다시 만나면서 멈춰있던 시간이 비로소 다시 흐르게 되었습니다.”

아동 실종 신고는 해마다 2만 건 안팎에 이른다. 보호자의 신고를 접수한 지 48시간이 지나도 발견되지 않으면 장기 실종으로 분류된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실종아동은 99% 이상 조기에 발견되고 있으나 여전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고 있지 못하는 1년 이상 장기 실종아동이 954명이라고 한다. 실종된 지 무려 20년이 넘었지만 아동을 찾지 못한 사례도 663명으로 그 수가 적지 않다. 장기 실종아동의 문제는 생각보다 오래된 문제이고, 늘 우리 주변에 있어 왔다.

그나마 법과 제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어 보인다. 2005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2011년 법 개정으로 사전등록제와 위치추적제 등이 도입됐다. 2016년 전국 지방경찰청에 3~5명 규모의 장기실종전담팀도 만들어졌다. 요즘은 실종아동 발견을 위해 ‘유전자 분석’과 ‘지문 등 사전등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송이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지문 등을 미리 등록했다.

한동안 날씨가 좋아 송이를 데리고 주말마다 나들이를 다니고 있다. 용산의 어느 공원에 놀러 간 주말. 송이가 뛰어노는 풍경을 멀리서 담고자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아빠가 시야에서 사라진 걸 깨달은 송이가 울기 시작했다. 서둘러 뛰어가 송이를 안고 달래려 했지만, 내가 야구장 만한 크기의 정원 끝까지 안고 있는 동안 송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송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다음에는 갑자기 자리 비우지 않을게.” 송이는 한참 뒤에야 내 등을 만지작거리며 진정할 수 있었다.

나도 어릴 적 가족을 잠시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당시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꽤 충격이 컸었나 싶다. 장소는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 강가. 친척과 함께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강가에서 놀다가 주변을 보니 엄마와 아빠,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가족이 보이지 않자 불안이 커졌고, 운 채로 어딘가 마냥 걸었다. 어머니 말로는 나를 어느 식당에서 찾았다고 했다.

“우리가 너를 한참 찾았는데 식당 주인이 찾아서 잠깐 보호하고 있더라고. 식당 주인이 여기에서 같이 살자고 하니까, 네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대. 다들 그 자리에서 웃음이 빵 터졌지….” (어머니의 카톡)

그날의 기억을 어머니께 여쭤보니 이런 카톡이 왔다. 웃을 수 있는 추억이라 참 다행이다. 어린 나이의 내가 진지하게 앞으로 살 날을 걱정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이제 내 삶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초등학생의 모습이 이렇게 추억으로 남아 다행이지만, 만약 이게 진짜였으면 얼마나 악몽이었을까.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가 된 이상,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먼저 떠나는 게 수순이다. 모든 이별은 필연이고 괴롭다. 그런데 간혹 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이유도 모른 채 각자 위치에서 떨어진 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 상실과 슬픔이 얼마나 클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주변의 관심과 제보로 남은 이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실종아동을 알고 계신 분이나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분은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112) 또는 실종신고센터(182)로 연락을 부탁드린다.

🚨길 잃은 아이를 발견하면 이렇게 해 주세요.

• 평소 똑똑한 아이도 길을 잃고 겁에 질리게 되면 묻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어요. 아이의 불안한 마음상태를 이해하고 달래주어야 해요.
• 먼저 경찰청 실종아동 찾기센터(국번없이 182)로 신고하세요.
• 아이가 진정되면 이름과 사는 곳, 전화번호 등을 물어보세요. 아이가 집에 간다고 해도 혼자서 가버리게 내버려 두면 안 돼요.
• 아이가 있는 장소에 그대로 서서 일단은 아이의 부모를 기다리는 것이 좋아요. 아이가 잠깐 한눈을 팔거나 부모 부주의로 아이와 떨어진 경우 아이의 부모는 가까운 장소에 있기 마련이에요.
• 아이의 의복이나 신발, 소지품 등을 확인해 보세요. 유괴 방지를 위해 아이의 이름이나 집 전화번호 등을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두는 경우가 많답니다.
•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의 경우, 안내데스크나 방송실에 실종아동 찾기 안내 방송을 부탁하세요.
  (출처: 안전 Dream 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Fathers' Update

지난 레터(67화 엄마의 얼굴을 한 아빠)를 읽고 구독자 분들이 보내주신 답장 일부를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아이가 아플 때, 어떠한 사고 및 위험에 닥쳤을 때 저는 모든 불찰이 엄마의 부주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미안해”하며 눈물부터 나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편이에요. 반면 남편은 정말 침착하게, 응대를 하는 편이에요. 이번 글을 통해 엄마든 아빠든… 부모는 체력뿐 아니라 마음도 강하고 단단해야 함을 다시 느껴봅니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 저도 작년에 새끼 손가락이 골절되어 수술했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과연 수술을 하는게 맞나?’ ‘오히려 간단히 뼈를 맞추는 게 맞나?’ ‘아이의 미래나 건강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이 좋은 거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요.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  6월에 아이가 태어나는 예비 아빠인데 출근 후 잠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잘 읽었습니다! (호박부부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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