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님은 혹시 인형극을 본 적이 있나요? 정우님은 첫째 아이의 10번째 생일을 맞아 춘천에서 인형극을 처음으로 봤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묵직한 주제에 여운이 많이 남았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였을까요?

50석 정도 규모의 소극장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계단식 철제 벤치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 앞줄에도 가족이 앉았다. 엄마는 검지를 입에 대고 쉿 소리를 내며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아빠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무대 중앙에 조명이 밝혀졌다.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바구니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주말이면 가끔 가곤 하는 춘천에서 ‘인형극장’이라는 이정표를 보았다.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니 ‘춘천인형극제’(←클릭)라는 페스티벌이 있었다. 첫째 아이의 생일이 축제 기간 무렵이어서 고민하지 않고 숙소부터 예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형극’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탈을 쓰고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뭔가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교육적인 장르라고 생각했다.

숙소는 해결했으니 이제는 수많은 인형극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인형극에도 국적이 있는지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네시아, 일본, 몽골, 미국, 프랑스 등 나라 이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소극장의 공연은 스페인 딱지였다. 제목은 ‘VIDA’. 스페인어를 곧잘 하는 아내는 ‘삶’이라고 했다. VIDA의 뜻이.

“내가 어릴 적 나의 엄마는 집에서 일했어. 엄마의 재봉틀은 ‘티키티키’ 소리를 냈어. 나는 엄마와 엄마의 손을 바라봤어. 엄마에겐 이런저런 바느질 도구를 보관하는 바구니가 있었는데 나는 그 바구니로 노는 걸 좋아했어.”

연출자(Javier Aranda)의 독백을 시작으로 바구니를 포함해 소품 몇 개와 두 손으로 인형극이 진행되었다. 연출자는 한 손으로 몸과 팔과 다리를, 그리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만들었다. 공중에 떠 있던 바구니에서 기저귀를 입은 남자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당연하게도) 성장한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거쳐 파트너를 만난다. 바구니가 몇 차례 들썩들썩하더니 뿅 하고 다시, 그리고 새로운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8세 이상 관람가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기준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극 전반의 주인공이 엄마와 아빠였다면 후반의 주인공은 아이였다. 이 아이도 (당연하게도) 성장한다.

연출자는 초록색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 풍선을 다시 아이의 입에 대고 아이에게 불어넣어 성장을 표현한다. 아이는 성장했고 성장은 곧 이별을 의미했다. 아이는 초록색 풍선에 매달려 하늘 위로 날아간다. 아이는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목소리로 “엄마, 아빠”를 외치며 점점 멀어진다. 셋은 둘이 된다. 둘은 하나가 되고. 남은 하나는 첫 아이가 기저귀를 입고 나왔던 바구니로 들어가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허무했다. 극이 진행된 55분 동안이 허무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형극이라는 이 멋진 장르를 처음 접해서 흥분될 정도였다. 허무함은 고작 이것이 VIDA인가라는 생각에서 생겼다. 바구니에서 나와 바구니로 돌아가는 VIDA. 그렇다면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왜 나는 아직도 엄마와 아빠보다는 저기 초록색 풍선에 매달려 있는 아이에게 나 자신을 대입하고 있는 걸까.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앞자리 가족의 엄마가 극 중간중간 크게 웃자 그 집 아이는 “우리는 조용히 하라면서 엄마는 왜…” 하고 물었다. 엄마는 “웃는 건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말도 안 되지만 꽤 그럴싸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는 다음날 10살 생일을 맞았고 나 또한 아빠가 된 지 10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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