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요즘처럼 포근한 날씨에 집에만 있지 말고 가볍게 산책하듯 바깥 나들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편지는 건강검진 후 두 아이들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 정민님이 보냅니다.

📍 다음주는 가정의 달 연휴 관계로 저희 레터도 쉬어갑니다. 님도 안전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1.

모처럼 하루를 쉬었다. 보통은 일어나면 없는 아빠가 침대에 있으니 둘째가 눈 비비며 다가와 품에 폭 안긴다. 

“아빠, 오늘 회사 안 가?”
“응, 오늘은 하루 쉬려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요즘에는 꽤나 못봤던 풍경이다. 알아서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간다. 늦잠 때문에 약간 실랑이가 있긴 하지만 이정도가 어딘가. 제법이다. 다들 제법 컸다. 건강한 몸으로, 휘적휘적 학교에 간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 것도 돌아보니 겨우 십여 년 남짓이다. 건강하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께 감사합니다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길지 않았던 지난 십여 년 동안,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잔병치레만 몇 번 했을 뿐, 크게 아프지 않고 컸다.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아파서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던 부모들을 꽤나 보았던 터라, 이정도만 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잔병들조차, 하나 하나 순간 순간 기억이 난다. 기침을 하고, 구토를 하고, 고열에 시달리고, 장염에 걸리고, 찢어진 상처에 피가 나서 울던 그런 기억들. 아이에게는 별 거 아니라고 하면서 정작 병원에 데리고 가는 내내 혹시나 더 심각해지기라도 할까봐 마음이 두근두근 불안했던 순간들이. 

가끔 낮에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전화보다는 문자가 익숙한 시대에 전화를 한다는 건 그래도 꽤나 중요한 용건이라는 의미다. 

“아빠, 오늘 너무 몸이 안 좋은데, 학원 안 가면 안돼?”

내 몸은 회사에 있고, 아이의 몸은 집에 있다. 몸이 어떤지, 오늘 학원을 갈 만큼 컨디션이 되는지는 아이만이 안다. 나는 또 시험에 든다. ‘그래, 그냥 푹 쉬어. 학원이 뭐 대수야!’ 라고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낸 이번 달 학원비가 계속 아른거린다. 그래서 소시민 아빠는 미적지근한 답변으로 아이와 나름의(!) 타협을 시도한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Clear is Kind’*가 정답이라는데, 이런 면에서는 영 낙제다.
* 작가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이 저서《리더의 용기(Dare to Lead)》에서 언급한 개념 중 하나로, 명확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래, 많이 안좋은 것 같으면 쉬어야지… 좀 쉬었다가 괜찮아지면 가.”
“응???(...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어물쩍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면, 아이도 스스로 고민한다. 경험상 절반 정도는 학원에 가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집에서 쉬는 것을 택하는 것 같다. 

2.

어릴 때 ‘개근상’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도 학교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첫째 졸업식 때 알게 되려나.) 

5학년 어느 겨울, 독감에 심하게 걸렸던 날이 있었다. 너무 아팠지만 지각이나 조퇴가 있으면 개근상을 못 받는다고 해서 울음을 꾹 참고 학교에 갔다. 힘겨운 몸을 이끌고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하루를 버텼다. ‘이 순간을 못 견디고 포기하면, 개근상은 물 건너갔어. 5년이나 참고 버텼는데, 지금 그걸 놓친다고…?’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나 간절했었다. 지금도 그날 교실 풍경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게 정말 그렇게 중요했을까. 물론, 개인적인 성실함의 징표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석이나 조퇴가 몇 번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실하지 않다고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삶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정말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정, 이를테면 내가 아닌 남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살다보니,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건사고들이 계속 일어난다. 부모가 된 이후로는 더 그렇다. 싱글일 때는 나만 잘 하면 그럭저럭 괜챃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가족을 이룬 이후로는, 그게 얼마나 만용에 가까웠는지를 거의 매일같이 느낀다. 

삶에서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겨나면, 나의 성실은 그를 향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 일은 뒷전이 될 때가 많아진다. 전에는 빠지지 않고 다니던 어학원도, 피트니스도,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도 루틴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는 회사도. 아이의 참관수업과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겹치면 부모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개근상을 받으려고 기를 썼던 그 등교날이 생각난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개근상을 받고 싶었던 같은 반 옆자리 친구는, 학교에서는 차마 말못할 다른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퇴를 결석을 밥먹듯 하고 결국 개근상을 못 받지 않았을까. 

졸업식 날, 6년간 바라던 그 개근상을 받았다. 출결란에 숫자 하나 없이 점만 찍혀 있는 하얀 통지표와 함께. 그게 뭐라고. 

그래서일까. 아이에게 무턱대고 ‘빠지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판단할 수 있는 선에서는 판단해보는 거다. 제 컨디션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보고, 갈 수 있으면 가고, 안될 것 같으면 가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해서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니고, 이 상황에서 내가 이걸 가는 게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 그게 아마도, 학교 하루 빠지면 오늘은 어디에 맡겨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고, 하루치 학원비 따위에 전혀 종종거릴 필요 없는 능력있는 부모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앞으로 키워가야 할 능력일 게다.  

양육자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머릿 속 생각의 방향을 한쪽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어렵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3.

모처럼 회사를 쉬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이런 저런 것들이 점점 결과지에 더 많이 적힌다. 오늘은 일은 잠시 잊고, 오롯이 내 건강을 좀 더 챙기는 날로 삼아야겠다. 

일년에 얼마 되지 않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봄이다. 러닝화를 신고 공원에 가야겠다. 초록빛 공원을 달려야겠다.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봄볕을 만끽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날들이 아직도 꽤나 많이 남아있다. 

내가 아프면, 아이도 아프다. 그러니 아프면 안되겠지. 아이는 곧, 나(=I)이기도 하니까.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33화 둘만의 시간이 필요해)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저도 아이가 셋이어서 그런지 이번 정우님의 레터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갔어요. 아이스크림 세 개를 사야하면 고민이 되지만 하나만 사야할 땐 부담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그런 것들이요. (놀이공원 아이스크림 왜이렇게 비싼가요...) 글을 읽으며 저도 아이들과 한동안 외동타임를 가지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네요. 다시 부지런해져봐야 겠습니다. (심심 님)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