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콜록콜록" 

평소처럼 등원 준비를 하던 11월의 첫 아침, 아이 목구멍에서 추운 날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기침 소리가 났다. 울림이 깊고 소리가 거친 게 단순 기침이 아닌 것 같아 등원 전에 병원을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은 내가 어제부로 퇴사를 해서 아침 시간이 여유롭다는 것이었고, 다행 중 불행은 퇴사와 함께 출퇴근 차량도 반납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소아청소년과와 어린이집을 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출근을 해야 하는 (단기 외벌이를 해야 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수강신청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똑닥 앱을 켰다. 뒷시간에 쫓기지 않고 오롯이 예약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 덕인지 아이를 빠르게 등원시키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라는 하늘의 계시인지 신청 버튼을 누르자마자 뜬 명수는 10명. 나도 모르게 (기쁨의)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숫자였지만 흥분을 속으로 감추고 얼른 아이에게 외출복을 입혔다. 병원까지 거리는 차로 15분.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선 가장 비싼 대중교통인 택시를 타야만 했다. 

오랜만에 켠 택시 앱에서 목적지를 찍으니 예상 요금이 만원이 훌쩍 넘는다. 기본요금이 올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돈을 조금 더 내면 더 크고 쾌적한 택시를 빠르게 잡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식 달콤한 제안도 같이 보였지만 지난달 대비 줄어들 월급을 생각하며 기본 옵션을 택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생의 무급 휴가인데 첫 날부터 몇천 원에 예민해지다니, 직장을 그만둔다는 느낌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는 다르구나 싶었다. 

잡힌 택시가 아파트 정문에 서고 아이랑 같이 뒷좌석에 탔다. 자리에 앉아 아이랑 안전벨트를 하려고 하는데 순간 카시트가 없을 때 아이랑 어떻게 타야 안전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이랑 택시 안전벨트'라고 검색을 하니 뜨는 내용은 원했던 실용적인 가이드가 아닌 선언적인 기사 헤드라인들이 떴다. 

‘택시 버스 뒷좌석도 안전벨트 의무화'

‘만 13세 미만 카시트 미설치 시 과태료 6만원’

멋 모르고 탄 택시에서 갑자기 범법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무렵 영업용 차량은 사회적 반발로 단속이 무기한 유예되고 있다는 카드 뉴스를 읽고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졌다. 법에는 의무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를 단속하는 경찰이 영업용 차량의 카시트 보급률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질 때까지 계속 단속을 유예한다는 내용이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과연 단속을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막연한 궁금증이 생기면서도 막상 택시를 급하게 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니 경찰의 선택이 그저 현명하게 느껴졌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들러 약 수령을 마친 뒤 다시 어린이집까지 이동을 해야 되는 상황. 다시 같은 비용을 내고 택시를 타기에 부담이 되어 이번엔 버스를 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미 엄마랑 몇 차례 타본 경험이 있던 아이는 아빠 차가 없음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고 흔쾌히 버스정류장에서 파란색 큰 차를 기다렸다. 어린이집에서 매일 보던 꼬마버스 타요 장난감 덕인지 아이의 얼굴은 시내버스가 아닌 마치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정류장에 271번 버스가 서고 아이를 가까스로 태운 후 카드를 찍으니 1,500원이 찍힌다. 아이는 얼마냐고 물으니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검색을 해보니 6세 미만까지는 보호자 동반하에 무료로 탈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사회 제도에 대한 무지 때문에 범법자가 될 뻔했는데 이번엔 버스 기본요금 체계도 모르는 어른이라니, 절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얼마나 무지했는지 각성을 하며 아이의 얼굴을 보는 데 아이는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채 놀이기구 타요의 실내를 재밌게 경험하고 있었다. 장난감보다 훨씬 큰 차의 크기에 살짝 긴장한 것 같기도 했지만 다섯 정거장을 지나는 내내 똘똘하게 뜬 눈으로 버스에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신기해하며 질문을 해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앞서 내린 사람들처럼 스스로 큰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와 승용차와는 다른 하차감을 경험했고, 엘리베이터가 바로 옆에 있는 지하주차장이 아닌 바깥 정류장에 내려 어린이집 건물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어린이집이 어떤 건물 안에 숨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세 시간 가까운 아들과의 등원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앞선 버스에선 혹시라도 아이가 넘어질까 두려워 바깥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혼자서 앉아 있자니 창 밖 풍경이 제대로 보였다. 매일 운전석 앞 유리창으로 볼 때는 안 보이던 동네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다 큰 어른도 이렇게 새롭고 신기한 데 아이는 오죽했을까. 그동안 나도 아이도 너무 똑같은 창문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건 아닌지 반성이 되었다.

만약 언젠가 택시와 버스의 유아용 좌석 보급률이 높아지면 아이가 안전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좀 더 세상을 다양한 감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도 지금의 국룰처럼 여겨지는 자차 구매를 미루고 더 가볍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론 편안한 마음으로 바깥 창문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주의 토요일과 일요일, 아이랑 차로 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동네 놀이터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분명 자주 오던 놀이터인데 뭔가 평소랑 다르게 느껴졌다.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고 아이의 움직임, 동작 하나하나가 새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차가 없어서 불안했는데 지금은 뭔가 마음이 가볍기만 했다. 자동차 한 대의 무게가 사라진 만큼 마음도 삶도 가벼워진 걸까. 아니면 퇴사를 해서 그런 걸까. 

회사도 차도 내 삶의큰 틀이었던 동시에 매일 걸치고 있기엔 무거운 옷이자 프레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다 곧 다시 그 틀을 원하겠지만, 오늘만큼은 가벼운 생활을 좀 더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무게는 당분간 점점 더 무거워질 테니. 

Fathers’ Update

💬 현재 어린이집 유저인 2세 남아를 양육하는 아빠입니다. 당장은 다가올 유치원에 대해서만 고민을 좀 해야겠다 싶었는데, 초등학교와 이사 등등 앞으로의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쉽지 않은 선택이겠다 싶네요. 앞으로의 저희 부부에게도 다가올 미래인 듯 싶어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시즌1 마무리 된다니 아쉽네요. 개인적으로 카카오 브런치와 블로그로 육아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합니다만, 혹시 저도 썬데이파더스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김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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