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1.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구랑 시간을 보낼까

얼마 전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한 사람이 사는 동안 누구랑 주로 시간을 보내는지*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 OWID)**에서 정리한 자료였다.

* Esteban Ortiz-Ospina, Who do we spend time with across our lifetime? (Our World in Data, 2022.12.11.)
** 글로벌 문제에 초점을 맞춘 통계 사이트.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등록된 자선단체 글로벌 체인지 데이터랩(Global Change Data Lab)의 프로젝트로, 연구팀은 옥스퍼드 대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데이터가 말하는 바가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가령, 청소년기에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되면 직장 동료, 배우자,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다.

현재 내 나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니, 39세의 하루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략 이렇게 채워진다고 한다.

• 혼자 보내는 시간: 282분
• 아이와 보내는 시간: 266분
•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 212분 (심지어 아이랑 보내는 시간보다 적다. 이래서 요즘 티격태격했나…)
•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 173분
• 원가족과 보내는 시간: 53분
• 친구와 보내는 시간: 34분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모든 사람의 패턴이 똑같진 않을 것이다. 이 데이터는 지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인의 시간 사용 조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살아가는 모습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고,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인 한국에서처럼 결혼이나 양육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전반적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높지 않을까.

그럼에도 시각적으로 명료한 그래프를 보며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지금의 나는 생애주기상 아이랑 보내는 시간 비중이 가장 높을 때라는 사실이다. 몇 년만 지나도 아이랑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감소 추세를 보여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도 어려울 것이다. 나의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이미 대폭 줄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지난 육아휴직이 피크였을지도 모른다.

2. “현재의 행복만을 기준으로 선택하지 마”

미국에 있는 삼촌과 다시 화상으로 만났다. 이번에는 구글밋으로. 그는 지난 6월, 내게 5년 재무 계획을 짜보라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숙제는 하지 못했다. 대신 고민만 잔뜩 들고 왔다. 복직 후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대신, 그만큼 송이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예전보다 행복감이 덜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렇게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시기에, 온갖 일들로 번잡해진 삶을 단순화할 순 없을지 삼촌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명료했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할 정도로 따끔했다.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솔루션은 간단해. 극단적으로는 네가 일을 그만두는 거야.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있는 거지. 이게 지속가능할까?”

파이낸스 분야에서 일한 삼촌답게 숫자로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걸 감정적으로 결정하면 안 돼. 개인적인 행복보다는 충분히 계산해 보고 따져보는 걸 권하고 싶어. 네가 결혼을 선택했고 자녀를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건, 그만큼의 의무(obligation)가 있음을 뜻해. 현재 아이 키우는 데 매달 나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알고 있어? 아마도 지금이 가장 저렴한 시기일걸? 유치원만 보내도 앞으로는 돈이 더 필요하니까. 향후 5년 내에 송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총비용을 따져봐야 할 거야.”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반면 네 소득은 앞으로 5년 동안 어떨까? 직장인으로서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어. 연봉이 마냥 높아질 수도 없고. 어른의 우선순위는 ‘일’이야. 일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주제이자 행위이거든.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일은 중요하고, 그 덩어리가 송이를 비롯한 가족의 기반을 만들어줘.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만의 수익원이 있다면 그걸 꼭 붙잡길 바라.”

삼촌은 현재의 개인적인 만족감이나 행복을 바라보는 대신, 스스로의 인생에서 한 발 물러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언가 선택하거나 판단할 때 1순위 기준은 언제나 가족이어야 하고, 그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촌은 미국 이민 1.5세대로서 치열하게 살았고 숙모와 함께 딸 셋을 훌륭하게 키우셨다. 이미 자신의 삶으로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그는 새벽 늦게 퇴근할 정도로 한창 일이 바빴을 때, “비록 지금의 행복이 10% 덜 하더라도, 나중에 모두를 위해 나은 방향이라면 기꺼이 감내했었다”고 덤덤히 고백했다.

3. 꾸준히 좋은 인생

수북이 쌓인 가을 낙엽길을 아내랑 송이랑 걸으며 생각해 본다. 꾸준히 좋은 인생이란 뭘까. 행복보다 ‘시간’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현재 내 생애주기에 맞는 시간에 충실할 것.

인생은 한정된 시간 동안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시간의 성격에 맞는 에너지를 그 시간 동안 잘 쓰는 게 중요하다. 그런 시간을 보낸 뒤에는 어김없이 충만한 기분이 들었고, 그런 기분이 곧 행복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모터사이클 여행 때 하루치 에너지를 소진하며 맛본 행복이 그랬고, 프로젝트의 성과를 위해 일에 몰입하던 순간에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육아에도 체력과 정신 에너지가 든다. 밤 9시에 아이와 침대에서 뻗더라도 충만한 기분이 드는 건, 그만큼 하루를 진하게 보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이쯤에서 송이 사진 두 장

일과 육아가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최근의 고민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굳이 이런 걸 고민하지 말자. 그리 중요한 고민도 아니었다. 그냥 둘 다 하면 된다. 데이터도 말하지 않나. 육아는 결국 한 시절이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오래도록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배우자라고. 은퇴 전까지는 직장 동료와 시간을 보내는 비중도 은근히 높으니 어디서든 가까운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해지자.

질문을 바꿔본다.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 스스로에게는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겠다. 나 자신과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하니까.

Fathers’ Note

💬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만든 음식을 한 입 먹고는 우웩 하는 딸에게 눈을 흘기며 엄마 삐졌어!! 를 외치는 제가 한심하긴 하지만, 정말 열심히 만든 음식과 간식을 쳐다도 안 볼 때는 화딱지가 납니다!😤 언젠가는 엄마가 해준 게 먹고 싶어! 그런 말을 할 날이 오겠지요 ㅎㅎㅎ 직접 요리를 해 아이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는 모든 엄마 아빠 응원합니다! (손리무)

💬 ‘아이들이 아침에 버스를 타고 떠나면 아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못 쌀 도시락이 없다.’ 이금희 아나운서 목소리로 들리면서 눈물 핑 돌았습니다. (밤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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