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좋은 아빠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북토크가 끝을 향해 달려갈 무렵, 네 명의 아빠들이 사이좋게 두 개의 질문을 나눠 답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남겨진 질문. 하필이면 또 좋음에 대한 정의였다. 지난 레터에 대한 독자의 날카로운 피드백과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내 입에서 나온 답은 다행히 그럴싸해 보였다. 

“아빠이길 포기하지 않는 아빠라고 생각합니다.”

평일 저녁 스무 명의 독자와 지인들을 모시고 진행된 행사는 어색한 사인회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듣는 사람으로만 두 세 차례 참여해봤던 북토크를 작가의 자격으로 참여하다니, 정말 인생은 모를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두 번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으로 참여했지만 게스트보다 더 긴장하게 되는, 주최자의 탈을 썼지만 주체적으로 상황을 즐길 수 없는, 마치 또 한 번의 결혼식 같았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받은 느낌은 달랐던 것 같다. 행사 당일 새벽까지 준비한 슬라이드 덕분에, 당인리책발전소 김소영 대표님의 원활한 진행 덕분에, 그리고 나머지 네 아빠의 입담 덕분에 두 시간여의 프로그램은 마치 이십분짜리 영상을 본 것처럼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고 참석자들로부터 ‘좋았다’, ‘재밌었다' 라는 평가를 받으며 끝이 났다. 

정작 아이가 있는 독자들은 참여하기 어려운 시간대(아이 저녁을 먹이거나 씻기거나 재워야 하는 20시 전후)여서 작가들의 수보다 참석자의 수가 적은 초유의 북토크가 되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부모 참석자들은 아이를 조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기혼인데 아이가 없거나 미혼인 참석자들은 평일 저녁 귀한 시간을 쪼개서 지극히 사적인 아빠들의 육아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셨다. 

혹시라도 너무 썰렁한 행사가 될까 두려워 아내와 아이까지 부른 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랑 같이 놀 수 없다는 사실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내심 안심하며) 아내 손에 카페로 보내고 북토크를 진행했다. 아내는 조용한 북토크의 분위기와 34개월 아이의 욕구가 공존할 수 없음을 빠르게 깨닫고 결국 카톡 메시지 하나와 함께 집으로 갔다. 북토크와 뒤풀이를 끝내고 집에 온 나에게 힘들게 헛걸음을 했다며, 육아 책을 낸 아빠가 정작 아내에게 독박육아를 시켰다며 불평했지만 나는 나의 실체를 꿰뚫고 있는 엄격한 검열관 한 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편안했다고 (속으로) 말했다. 

사실 답변에 제약이 없었을 뿐 편안했던 질문은 없었다. 정확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질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엔 소설가 하루키처럼 멋있게, 어떤 질문엔 오은영 박사처럼 전문가처럼 답을 하고 싶었지만, 극 내향적인 성격에 출간도 북토크도 처음인 아마추어 공저자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나에겐 질문들이 남아있다. 더 잘 대답하고 싶은 질문들. 더 스스로 잘 정의하고 싶은 질문들.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 만약 다시 지난 화요일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질문들에 아래와 같이 답변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A. 자녀 둘과 손주 셋을 돌보신 외숙모께서 하신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들고 신기하고 사랑스럽고 그럴거라고. 아이가 태어난 직후니 3년 전에 해주신 말씀인데 아직도 유효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절대 혼자서는 & 어른으로서는 하지 않을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기쁨, 아이를 꽉 껴안을 때마다 느끼는 원초적 기쁨, 식물에서 새잎이 나거나 꽃이 피기 시작한 걸 봤을 때처럼 아이의 성장을 보면서 느끼는 신기한 기쁨이 있습니다.  

A. 맞벌이 부부도 주로 아내 분들이 육아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육아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는 누가 돈을 버느냐와는 다른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아빠 Dads>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만약 한 사람은 주당 75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게 그 가족에게 최선이라면 서로의 동의하에 그걸 전략으로 삼을 수 있지만, 그걸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되죠.” 썬데이파더스클럽 구독자 중 어떤 분은 주 양육자란 표현 자체가 사라지는 날이 가장 건강한 사회일 거라고 말씀해주셨었어요. 저도 깊게 동의가 되고 경제활동에 개인을 온전히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와서 경제적 주체와 양육의 주체가 일치하는 사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A. 직장어린이집은 보통 오후 6시에 정규일과가 끝나고 6시 반까지 1차 연장 보육, 7시까지 2차연장 보육, 7시 반까지 3차 연장 보육이 각기 다른 방에서 진행돼요. 한 번은 직장인들이 칼퇴근하듯이 6시에 딱 맞춰서 데리러 갔던 적이 있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걸 보고 스스로 뿌듯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회사에 일이 많아 30분 간격으로 반을 계속 옮겨 다니게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날 ‘가는 거야. 가야 해’ 이상의 설명을 못 했을 때도 스스로 별로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의 매일 가기 싫어하지만요.

1. 매주 일요일 밤 9시 데드라인.
2. 같이 하는 네 명의 아빠들.
3. 99%의 게으름을 이겨내게 만드는 1%의 책임감.
4. 글쓰기 힘든 주에 기꺼이 순번을 바꿔주고 레토르트 식품처럼 준비된 글을 데워서 꺼내 준 송이아빠 

A. 육아휴직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못 됩니다. 망설이거나 고민 중인 아빠들이라면 설득할 수 있지만 이미 육아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에게 육아휴직의 장점을 말하면 잔소리로만 들을 수 있어요. 결혼도 출산도 멋모르고 해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육아휴직도 멋모르고 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육아하는 아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스웨덴의 라떼파파 사진들이나 슈돌이나 과거 아빠 어디가 같은 육아예능을 추천합니다. 만약 단순히 망설이는 수준의 아빠라면 아래의 논리를 활용해보세요. 

1. 시간은 빠릅니다. 6개월도 1년도 생각보다 금방 갑니다.
2. 아이의 인생은 깁니다. 아이가 6개월, 1년 동안 아빠에 의해 나쁜 습관이 든다고 해도 충분히 복구할 시간이 있습니다. 
3. 네다섯 살 전의 아이들은 보통 낮잠을 잡니다. 바쁜 한국사회에서 스페인 사람들처럼 시에스타를 매일 누릴 수 있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4. 아직은 육아휴직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이 점차 늘어나면 휴직했다는 사실을 넘어 얼마나 육아를 잘했는지까지 증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5. 지금 같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예측할 수 없는 재해재난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만약 내년에 세상이 종말이 온다면 직장인으로서의 시간보다 아빠로서의 시간을 더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A. 신체적 체력을 키울 여력이 있다거나 만병통치약 같은 영양제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건 마음의 체력과 인내심인 것 같습니다. 제 지인 중 한 명은 매일 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서 소리를 지르면 아내에게 쌓였던 것들이 풀린다고 해요. 저는 기분이 처지는 날이면 차 안에서 메탈리카*나 익스트림* 노래를 듣습니다. 틀 안에서 틈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푸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1980년대 결성된 헤비메탈 장르의 밴드. 저는 엔터샌드맨과 데카던스댄스를 좋아합니다. 

A. 저도 아직 답을 못 찾고 있는 부분이라 더 잘하고 계신 분들의 답을 구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내와 제가 동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이 어려웠어요. 반면에 저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 따를 때 소통이 잘 되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조언이 떠오르네요. 아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둘 중 하나라고. 'Yes Honey' 아니면 'OK Dear' 

1. 돈과 낭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생각하는 아빠. 
2. 소금과 설탕, 채찍과 당근, 양육과 훈육을 조절할 줄 아는 아빠. 
3. 앞서 가야 할 때와 뒤에서 바라볼 때를 선택할 수 있는 아빠. 
4. 아이가 아이답게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 
5.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아빠. 
6. 좋은 아빠가 되는 걸 포기하지 않는 아빠. 
7. 이런 챗GPT도 생각할 수 있는, 남들이 정해놓은 정의들을 무시하고 본인다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빠. 

Fathers’ Update

💬 이서 가족의 도쿄여행이 많이 행복했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레터 읽었습니다! 도쿄여행 일정과 스팟들 너무 궁금해요👀💛 (재원)

💬 너무너무 좋았던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이서도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너무 잘 지내준 것 같아서 기특하네요! 올해 근속 휴가가 있어서 아이와 함께 스위스와 파리를 가려고 해요. 항공권까지 다 발권했는데 이번 주에 대구 한 번 다녀오고 '과연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너무 힘들었어요...) 혁진님의 글에서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어봅니다.ㅎㅎ 루트도 알려주세요. 24개월 되기 전에 아이와 꼭 도쿄 가보고 싶어요!  (밤박하)

💬 막 돌된 쌍둥이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여행을 가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엄두가 안 나는 상황...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도쿄에 데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해외여행을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인데, 가족 화장실(?)이 잘 되어있다니 꼭 가보고 싶네요 (조셉)

💬 한국에서도 카페를 찾기전에 노키즈존인지부터 확인하는 요즘인데 아이들에게 친절한 도시라니 아이들과 꼭 한번 가보고싶네요:) 30개월 4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둘째가 돌쯤이 되면 꼭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첫 여행지는 당연히 휴양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파더스 클럽을 읽고 도쿄도 좋은 선택지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일정및 숙박 정보 부탁드립니다:) (임햇살)

💬 아이와 함께한 척 해외여행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들뜨는 31개월 아이엄마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코로나에 아이 출산과 더불어 생각도 못했던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일이 그저 꿈이 아닌 현실로 가능하겠다 싶은 요즘 썬데이파더스클럽의 레터를 받고 아 이건 무조건 요청해야 해! 싶어 도쿄 여행 루트와 비행편을 부탁드려봅니다 ^^(꼬맹이는 나의 우주)

💬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의 행복을 글로 공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Jay)

💬 저도 첫째와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그날이 기억나요. 비행기에서 혹여나 울어서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까 아프진 않을까 지퍼백에 자리 근처 승객들에게 건네줄 양해 편지와 조그마한 다과 선물, 아이의 기압을 낮춰주기 위한 각종 사탕과 쪽쪽이, 그리고 배탈약부터 변비약, 모기약, 해열제까지 종류별로 약을 담아 떠났던 기억이나네요. 생각보다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 해피하게 있었고, 잠까지 잘 자주어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에 자신감을 얻었었어요. 아이는 나중에 기억 못할지 모르지만, 아이와의 추억이 또 다음 휴가를 기다라기 하는 것 같아요.(아이 둘 워킹맘)

💬 도쿄 여행 일정과 방문 장소 매우 궁금합니다 ㅎㅎ 용기를 얻고 싶어요~(잼잼)

💬 많이 행복했다는 아이의 말에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로서 뭉클했어요~ 감동😭 저는 겁이 많은 엄마라 아이와 올여름 제주에 갈까 말까 고민만하다 포기했는데, 혁진님의 레터를 보고 조금 많이 용기를 내서 도쿄에 도전해볼까 싶어지네요! 분명 많이 힘드셨겠지만, 그만큼 찐한 추억이 가득 생겨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정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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