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 눈이 떠졌다. 옆 침대에 누운 엄마랑 아빠는 아직 자고 있다. 둘 다 나보다 잠이 많다. 조용히 소리를 내어본다. “아- 아- 아궁- 다궁-” 여전히 반응이 없다.

울어본다. 이제야 아빠가 깬다. ‘왜 벌써 깼어? 지금 몇 시지?’라고 묻는 표정이다. 난 시계도, 스마트폰도 없어요. 아빠가 부운 두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린다. “벌써 7시 40분이네. 배고프겠다. 얼른 분유 타 줄게.”

아빠가 꼼지락댄다. 말을 못 하니 답답한 건 내 쪽이다. ‘나 배고프다고요!’ ‘이미 5분 전부터 깨어 있었다고요!’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다양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표현하려 하지만, 결국 우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내 울음이 부엌 끝까지 닿자 아빠의 움직임이 더 긴박해진다. 어느새 분유병이 내 앞으로 온다.

요즘 하루의 시작은 대체로 비슷하다. 내가 먼저 아빠를 깨운다. 간혹 새벽 5시에 깰 때도 있는데, 이런 날은 아빠가 ‘미라클 모닝콜’이라 부른다. 놀리는 건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정작 아빠는 스마트폰에 맞춘 알람을 자주 놓친다.

“보건소에 다녀올게”

하루의 시작은 같지만 이날 오전은 조금 달랐다. 주말 내내 배탈 몸살로 기운이 없어 웬일로 테니스 모임도 나가지 않은 아빠가 이번에는 목이 따끔하다고 했다. 뭔가 봉지에서 뜯더니 기다란 걸 코에 넣고 살살 돌린다.

“여보, 나 왠지 코로나에 걸린 거 같은데. 자가진단 키트에 두 줄(양성) 떴어.” “정말? 당신 주말 내내 송이랑 붙어 있었잖아. 어떡하지?” “혹시 모르니 일단 나만 PCR 검사받으러 보건소 다녀올게.”

밖으로 나갔다 온 아빠가 돌아왔고, 회사로 가는 대신 마스크를 쓴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한동안 아빠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같이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했고, 아빠가 안아줄 때만 보이는 풍경을 볼 수 없어 답답했다. 엄마도 마스크를 썼지만 어두운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랑 전화로 대화한 뒤 내게 외출복을 입혔다. 좀처럼 뛰지 않는 사람인 엄마는 유모차에 날 태운 뒤 달리기 시작했다. 보건소가 곧 끝날 시간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온 몸에 비닐을 둘러싸고 마스크까지 쓴 사람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다. 저 길쭉한 거… 아까 아빠도 집에서 비슷한 걸 꺼낸 걸 봤다. ‘앗 따가!’ 깜짝 놀라 울어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코가 따끔한 건 금세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후 밤에 잠들기까지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몸이 뜨거워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축 처지고 기운이 없다. 입맛도 없어 엄마가 저녁에 준 이유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자꾸 먹이려고 해서 투정을 부리고 떼를 썼다. 이날 밤 나는 38.8℃까지 열이 올랐다고 한다. 엄마는 밤새 내 곁에 누워 체온을 재거나 때때로 쓴 맛과 단 맛이 섞인 액체를 작은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 먹였다. 이렇게 쓴 맛은 처음이다.

“새츄레이션 농도가 몇이죠?”

다음 날 아침,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PCR 검사 결과 음성이래. 당신은?” 안방에서 아빠가 대답했다. “당신보다 일찍 검사받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네.” 문 건너편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근데 왜 계속 안방에 있는 걸까. 둘이 다툰 건 아닌 거 같은데.

한 시간쯤 뒤 아빠가 말했다. “방금 연락 왔어. 어쩌지? 송이랑 나는 둘 다 양성이래.” PCR은 뭐고 음성, 양성은 또 뭘까.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다시 엄마는 아빠랑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빠가 안방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나를 끌어안는다. 이번에는 엄마가 짐을 챙기더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어제부터 오늘까지 낯선 상황의 연속이다.

둘째 날 밤은 유독 길었다. 저녁부터 다시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랑 아빠가 내 기저귀만 남기고 모든 옷을 벗겼다. 가재 수건을 미지근한 물에 적시더니 몸 곳곳에 문질렀고, 이마에 미끌미끌한 열 냉각시트도 붙였다. 차갑다가 이내 미지근해진다. 이상하게 눈이 자꾸 감긴다. 어제부터 두 시간에서 네 시간마다 해열제도 먹고 있다. 입을 꾹 닫아보지만, 엄마 아빠는 포기를 모른다. 이럴 땐 나보다 고집이 세다. 안돼! 우웩! 그중 몇 번은 간신히 먹은 밥까지 다 토해내 아빠 잠옷에 튀어버렸다. 미안해 아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 그 약 도저히 못 먹겠어. 왜 자꾸 먹이는 거야. 너무 쓰다고!

새벽에 깼더니 엄마랑 아빠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해열제 먹이는 타이밍을 놓쳐 엄마는 단단히 화가 났다. 아빠는 해열제를 언제 먹여야 하는지 기준을 몰랐다고 했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고 타박했다. 으이그, 아빠. 그 상황에서 변명을 하면 어떡해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열 때문인지 엄마는 울면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 한 분이 출동했다. 그는 어제 내 코를 쑤신 사람과 비슷한 차림이다. 구급대원도 온몸에 비닐을 둘러싸고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까지 꼈다. 엄마가 물었다. “혹시 위급상황에 갈 수 있는 병원이 근처에 있을까요?” 구급대원이 병원 한 곳에 전화하더니 그곳 당직 간호사는 당장 입원할 자리는 없다며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새츄레이션 농도*가 몇이죠?” 구급대원이 조금 당혹해하는 게 느껴졌다. “음, 94 정도 같은데요?” “94요? 확실해요?” “잠시만요. 제가 다시 측정해볼게요.” 내 몸에서 아무것도 측정하지 않은 구급대원이 그 수치를 어떻게 알지? 아저씨, 괜찮아요? 엄마랑 아빠도 말이 없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입을 닫는다.
* 산소포화도(Saturation of partial pressure oxygen, SpO2). 혈액 적혈구의 헤모글로빈(Hb)에 결합된 산소의 양을 의미한다. 산소포화도의 정상수치는 95% 이상이며, 95% 이하는 저산소증 주의 상태, 90% 이하는 저산소증으로 호흡이 곤란해지는 위급한 상태가 된다. (출처: 하이닥)

잠시 뒤 구급대원이 집게 같은 걸 들고 다시 왔다. 내 손가락을 집었는데, 그러기엔 내 손이 너무 작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측정하긴 어려워 보였다. “지금 새벽에 병원 가셔도 정말 위급한 상황 아니면 계속 대기하셔야 할 거예요. 열성 경련처럼 진짜 위급한 때 아니면 집에 계시면서 최대한 열을 떨어뜨리는 게 나을 거예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집을 떠났다. 아저씨 그래도 고마워요. 덕분에 더 이상 아프면 나도 곤란해질 거란 걸 깨달았어요. 아빠도 정신 차린 거 같고요.

이번에는 아빠가 수시로 내 체온을 쟀다. 자는 동안 몇 번의 알람이 울렸다 꺼졌다. 전보다 알람 소리에 바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비몽사몽이었지만 커다란 손이 이마를, 귓가를 만지는 게 느껴졌다. 종종 잔기침이 나오는 아빠는 약을 먹거나 따뜻한 물을 마셨다. 아픈 동안 나도 빨대로 물 마시는 법을 터득했다. 이상하게 자주 목이 말랐다. 새벽에 깨면 아빠가 가져다준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밝고 노란 태양

열은 셋째 날 아침이 되어서야 온전히 떨어졌다. 이날 해 뜰 무렵의 짙은 노란빛을 기억한다. 그 빛이 열과 함께 집안의 무거운 공기도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옆에서 아빠가 울고 있었다. 근데 왜 아빠 울음은 소리가 안 날까. 아빠는 조용히 내 몸을 안으며 등을 계속 쓸어내렸다.

이날부터 거의 열흘 동안 종일 엄마와 아빠랑 같이 지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해 갑갑했지만 때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거실에서 신나게 춤도 췄다. 이런 시간은 내가 태어난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아빠가 출산휴가를 쓴 뒤론 오랜만이었다. 내가 웃을 때마다 엄마랑 아빠는 더 기뻐했다.

2주 후면 나도 정식으로 1살이 된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 PCR 검사, 새츄레이션 농도… 이 단어들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대신 아픈 동안 빨대로 물 마시는 법을 배웠고, 이도 몇 개 더 났다. 이제는 죽처럼 떠먹는 이유식보다는 손에 쥐고 직접 먹을 수 있는 밥전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이 단어 하나는 자신 있게 발음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발음하면 뭐든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힘이 난다.

“아-빠!”

송이 아빠의 변

지난 3월 16일 기준, 한국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62만 명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확산되며 주변에서도 확진됐다가 회복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셨을 텐데요. 저희 가족은 지난 2월 21일 저와 송이가 먼저, 25일 아내가 뒤늦게 확진되며 3월 초쯤 다 같이 회복했습니다.

당시 재택치료 경험을 송이 시점으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로 시작하는 권정민의 그림책 《엄마 도감》도 떠올랐고요. 돌이켜 보니 온 가족이 끈끈해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지만, 제 몸도 불편한 와중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꽤 힘들더군요. 한편으로는 그제야 회사 일도, 개인 일정도 미루며 스스로 ‘아빠’가 되었음을 자각하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오미크론 변이의 중증 위험도는 타 바이러스보다 경미하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편차가 커서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급적 피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만약 감염되었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잘 회복하는 게 중요하겠죠.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돌보면서 이 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들 이 시기를 무사히, 안전히 보내시길 바랄게요.

지난 레터 ‘육아휴직의 50가지 그림자’가 발송된 뒤로 많은 구독자 분들께서 공감된다는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일부만 추려서 소개합니다. 다들 소중한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1.

“규성 님의 글 너무 좋았어요. 저희 남편이 저의 권유로 한 달간 육아휴직을 썼었는데요. 그때 쓴 일기인 줄 알았어요. 육아휴직 동안 싸움이 잦았고, 감정 소모도 서로 컸던 시기였는데 이 글을 읽으니 한 번 더 남편 입장을 이해하게 되네요. (육아휴직 중인 아빠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빠들의 커뮤니티가 더 커졌으면 좋겠네요.” (뮨 님)

2.

“저는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이고, 첫 아이 때 회사 퇴직 후 1년을 육아 돌봄이로 시간을 보냈는데요. 지금도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며 여전히 육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많은 아빠들이 육아를 하지만 엄마들과 같이 공유하고 소통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아빠들의 육아와 외로움에서 도움이 되는 창구가 되길 기도합니다. 참고로 막내가 지난 10월에 태어났고, 첫째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하니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군요. 모든 아빠들 화이팅입니다.” (상문 님)

3.

“아직 결혼하지 않은 20대 여성이에요.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큰 이변이 없는 한 출산과 육아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순으로 여기며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주변 언니들을 통해 ‘엄마’로서 겪는 고충과 희생 등을 생각하면 ‘나…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지레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들이 많아지는 요즘, 썬파클 덕분인지 아빠의 입을 통한 육아 얘기가 제법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조금의 어색함과 뚝딱거림이 더 유쾌하기까지 한 것 같고요. 자라나는 아이의 순간만 캡처한 화면이 아닌, 일련의 모든 과정과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아빠와 함께라면, 출산과 육아. 그 살벌한 전장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요.” (현아 님)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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