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제 자식이라도 모든 순간이 사랑스럽고 평화로울 순 없다. 귀여움이 한창 물오른 22개월 송이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전투에 가까운 장면이 많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면서 양육자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전투는 송이가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아내와 나는 대체로 송이보다 늦게 깬다.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로 하루의 초장부터 무참히 패배하곤 한다. 어떤 날은 송이가 새벽 6시쯤 깨자마자 외친다. “맘마! 맘마!” 사이렌 소리인지, 아침을 차려달라는 소리인지 그 메뉴가 밥인지 빵인지 요거트인지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간혹 내가 식사 준비를 더디게 하거나 늦어지면 송이는 이내 심통을 부린다. 가끔은 본인 스스로도 잠결에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른 채로 투정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린이집 등원 준비는 많은 양육자들이 마주하는 전투다. 아이도 자기 주관과 고집이 있다. 기분 좋은 날이면 곱게 집을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잦다. 추운 겨울날, 대뜸 외투를 입지 않겠다거나 양말을 신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내 속이 터진다. “밖은 추워. 너 지금 콧물 흘리고 있는 건 알고 있니?” 결국 아이를 울린다. 억지로 내복과 외투를 갈아입히고 등원시킨 날이면 오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내 자괴감이 든다. 만약 지금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는데, 이렇게 아이가 떼를 쓰거나 등원 준비가 길어져 출근이 늦어지면 어떡하지? 예전처럼 맑은 에너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오전에 하루치 에너지를 이미 다 쓴 날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 왜 저럴까. 그 와중에 나를 잃지 않겠다고 애쓰는 스스로도 싫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실마리를 찾고자 아빠들과의 단톡방, 육아 커뮤니티, 전 국민의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등을 떠돈다. 그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몇 주 전에는 아내와 《돌봄과 작업》 북토크에 다녀왔다. 어떤 방식과 형태로든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의 작업을 병행하며 책의 부제처럼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진솔히 담긴 책이라, 아빠인 내게도 시사점이 많아 보였다.

이날 북토크에서 가장 자주 들린 말은 이랬다.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임에도) 모두 내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공저자이자 이 책을 편집한 김희진 대표가 서문에 쓴 것처럼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양육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작업과 삶 전반으로 펼쳐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하나하나 와닿았다. 부모에게 독립하고 싶어 결혼을 택했으나 그들에게 의존해야만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는 상황, 부모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떠안기는 육아서와 육아산업을 꼬집는 대목에서는 웃다가도 눈물이 나왔다.

세상 모든 엄마는 제 자식을 버린다. 그래야만 아이는 홀로 서고 한 사람의 독립된 개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자기 책임으로 떠안는 독립적 개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식구들은 다들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고 집에서 서로 위안한다. 생각해보면 부모로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계를 짓는 것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 번역가 홍한별의 에세이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중, 《돌봄과 작업》 p.75

아이가 두 돌이 지날 무렵, 심리서를 펴낸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학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친정엄마에 대한 죄책감미 한창일 때 그는 “자식이 부모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고, 부모가 또 자식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어요. 그때 잘하시면 돼요.”라며 인터뷰 도중 훌쩍이는 나를 위로했다. 육아서를 펴낸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아이에게 엄마 손이 필요한 시기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라는 말로 용기를 줬고 또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며 나의 양육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 인터뷰어 엄지혜의 에세이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중, 《돌봄과 작업》 p.154-155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일상을 지탱한 건, 육아 전문가의 지침이나 이론서가 아니었다. 실은 아이의 월령별 발달 정보 등을 찾아볼 정도로 부지런한 편도 아니다. ‘이 시기에는 이런 걸 꼭 해야 해’라는 정보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키우고 있는데, 이런 방법에도 한계가 있어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주변 양육자들의 말에서 오히려 위안과 힘을 얻는다. 밑미의 ‘육아일기 쓰기’ 리추얼을 통해 내밀한 육아 일상을 공유하는 초보 부모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좌충우돌 육아의 민낯을 드러내는 아빠들의 글과 독자 분들의 피드백이 내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날 북토크가 끝난 뒤 우리 부부는 여운을 나누지 못한 채 각자 귀가했다. 우리가 평일 저녁, 북토크 장소였던 강남 뱅뱅사거리의 어느 카페에 있는 동안, 누군가 송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맡긴 조부모님 댁으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버스 안에는 북토크에 참여했던 다른 독자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지금 집에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줘.”

정답은 없다. 상황은 빠르게 변한다. 이 전투는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장기전에는 연대할 사람이 필요하다. 어쩌면 전투의 대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육아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겠다. 이 모든 전투와 혼돈을 앞서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어 고맙고 다행이다. 다들 쉽게 지치지 않으면 좋겠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51화 아이의 공간 어른의 시간)에 보내주신 답장들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아이의 겨울방학을 지구 주변의 행성이 궤도를 도는 것처럼 표현하셔서 매우 재밌었어요. 출산과 육아를 하기 전, 제 직장은 보육원이었습니다, 마지막 근무 무렵은 제가 맡은 5살 아이들이 6살이 되어가는 겨울방학이었죠. 제가 양육자로 있던 반 아이들이 6명이었고요. 다니던 어린이집도 중구난방이라 방학 및 개학식이 달랐지만, 개기월식 마냥 포개어지는 그 기간… 6명의 아이들의 끝없는 주말 마냥 단체생활로 돌아온 그날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의 왁자지껄 하하 호호 웃음소리 및 서로 장난감을 두고 싸우던 티격태격 소리 등 모든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퇴사하여 28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히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을 텐데, 어떤 소리들을 내며 보내고 있을까요? (보고싶어내아가들)

💬 지금은 반년에 한 번 일주일씩 어린이집 방학 생기는 것도 벅찬데... 초등학생의 한 달짜리 방학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막막해지네요. ㅎㅎ (옐로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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