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레터는 두 돌을 넘긴 이현 아빠 규성 님이 보냅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를 오마주했다고 하네요. 구독자 여러분은 가장 최근에 울어본 경험이 문득 언제인지 궁금해지네요.

다음 레터는 추석으로 한 주 쉬어갈게요. 구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으아아아앙.”

아이 방에서 소리가 난다.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아내랑 나는 비몽사몽인 몸을 이끌고 방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마주한 아이는 꿈속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왔으니 곧 진정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는 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결국 아내가 한참을 안아 달래고 물 한 모금 먹이고 나서야 다시 이불에 등을 대고 잠들었다. 

신생아 때였으면 혼비백산하며 아이 방으로 뛰어들어가 어디 아픈 건 아닐지, 혹시 야경증*은 아닐지 걱정하며 아이가 잠든 후에도 한참을 옆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아이 두 돌을 넘기고 3년 차 부모가 된 우리는 아이가 잠들자마자 안방으로 넘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악몽을 꿨나 봐”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공포에 찬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2~3분 후에는 조용히 잠이 드는 증상. 2~8세의 신경이 예민한 어린아이에게 많으며 취침 전 과식, 정신 흥분 따위가 원인이다.

태어난 날부터 70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가 총 몇 번을, 몇 시간을 울었는지 알 수 없다.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는 말할 수 있다. 해가 뜨고 진 날 만큼. 떼쓰기가 절정인 요즘은 하루에 이틀 치를 우는 날도 있다.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서, 옷과 손에 짜장면이 묻어서, 보고 싶은 핸드폰을 못 보게 해서, 목욕 중 눈에 물이 들어가서, 자다가 목이 말라서, 밖에 나가고 싶은데 아빠가 이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주방도구를 아빠가 요리할 때 써서 등등. 다 쓰고 보니 이유도 참 각양각색이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1년 전에 비해 이유와 원인 제공자가 비교적 선명하고 때론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원인을 아는 것과 울음을 피하는 건 다른 문제다. 

아내의 출장으로 오랜만에 혼자 육아를 하던 어느 날.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 직전인 아이를 미용실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단둘이 미용실에 간 게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겨울 호기롭게 혼자 아이를 데리고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미용실 가운을 입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달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기모 스웨터를 그대로 입은 채 머리카락을 잘랐다. 집에서는 스웨터의 일부처럼 결합된 머리카락을 몇 시간 동안 떼어내야 했다.

이번에는 그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집에서 쓰던 긴팔 가운을 미리 챙기고 여분의 옷과 울음을 달랠 간식까지 챙겼다.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미용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지난겨울을 기억한다는 듯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몸을 비틀며 완강히 저항하는데 이대로 들어갔다간 미용실 안을 가득 채운 손님들에게도, 나와 아이 사이에도 큰 사단이 날 것 같아 일보 후퇴.

한 시간이 지났을까. 머리를 깎을 때 쓰려던 비장의 무기(젤리, 약과, 과자 등)는 이미 동이 났다. 보다 못한 미용실 직원이 달려 나와 츄파춥스를 손에 쥐어주며 머리를 잘 자르면 먹을 수 있다며 아이를 달랬다. 평소 같았으면, 사탕에 눈이 반짝 빛났을 텐데. 정말 미용실이 무서웠는지 손에 쥔 사탕을 돌멩이 보듯 했고 다 깎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아빠의 권모술수에도 넘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미용실에 먼저 왔던 손님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겨우 문 안까지 들어온 우리는 어렵게 거울 앞 좌석에 앉는 데까지 성공했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준비해 온 턱받이를 입히고 나서 미용사가 자른 옆머리가 아이 손에 탁 묻는 순간, 한 시간 동안 잘 버텨왔던 감정은 폭발했고 미용실 안은 익숙한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으아아앙. 으엉. 으엉. 으아아앙. 으엉. 으엉.”

이제 남은 건 각자가 각자 방식대로 버티는 일뿐. 아이는 아이대로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공포 속에 버거운 감정을 울음으로 쏟아냈고, 나는 나대로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과 아이의 몸부림을 버텨가며 휴대폰 속 뽀로로 영상이 멈추지 않도록 애썼다. 미용사는 사이렌 같은 울음 속에 어떻게든 커트를 빨리 끝내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와중에 머리를 바리깡으로 못 밀고 가위로만 커트하는 게 답답했는지 확 밀어버리고 싶다는 본심을 입 밖으로 꺼내는 바람에, 겨우 진정되어가던 아이가 다시 한번 머리를 뒤로 젖혀가며 울어댔지만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의 말에 따르면 아이 울음에는 크게 세 가지 분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생존을 위한 울음.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아플 때 나온다. 둘째, 훈육 관련 울음이다. 떼를 쓰거나 하기 싫은 걸 미룰 때 나온다. 셋째는 어른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울음인데, 감정이나 감각이 감당되지 않아 나오는 울음이다. 생존 울음은 부족한 걸 채워주면 되고, 훈육 관련 울음은 부모가 약해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야 한단다. 마지막 울음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거나 환경을 바꿔야 하는 울음이라고 한다.

문제는 모든 게 복합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잠을 못 자 떼쓰기의 강도가 더 세질 때가 있고, 배고픔과 배아픔이 구별되지 않아 아픈 것처럼 울 때도 있으며, 압도적인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최대한 울면서 하는 걸 미룰 때도 있다. 이번처럼 미용실이나 소아과, 치과를 갈 때는(아직 찾아오지 않은 퀘스트다) 아이에게 지금 가는 장소가 큰 공포이자 스트레스인 걸 알면서도 반 강압적으로 끌고 가야만 한다. 싫어도 꾹 참고 해야만 하는 게 있다고 훈육하면서 말이다. 

그나마 모든 울음에 끝이 있어 다행이다. 커트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아이는 본인이 울고 있던 걸 까먹은 사람처럼 뽀로로 영상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울음을, 또는 우는 연기를 시작할 무렵에도 그 기세와 눈물은 급격히 잦아들어 안심하고 머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 스스로 울음의 끝을 경험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뭔가 스스로 끝낼 기회를 충분히 준 것 같아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물론 미용실에서 갑작스러운 울음 소나기를 우산 없이 맞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죄송했지만.  

아이가 말을 배우고,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울음의 감각 역시 점점 둔해질 것이다. 초등학교 때 신발장이 어딘지 몰라 복도에서 목놓아 울던 울보가 이제는 웬만한 슬픈 영화를 봐도, 웬만큼 크게 다쳐도 눈물 찔끔 안 하는 메마른 아저씨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 어릴 적에는 남자가 자주 울면 창피한 일이고, 성인이 돼서도 울면 어른답지 못한 거란 말을 종종 들었다. 내 아이는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우면 좋겠다. 생각과 감정을 꺼내 표현할수록 마음 공간이 넓어지고 감출수록 속이 좁아진다는데, 속 좁은 어른보다는 마음이 투명해 때론 아이처럼 울 줄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미용실에서 나오자마자 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감정이 풀리니 입맛도 돌아왔는지 돌멩이처럼 바라보던 사탕을 입에 넣고 자유롭게 거리를 뛰어다녔다. 사탕을 그렇게 먹으면 치과를 더 빨리 가야 된다는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입 안 사탕에도 끝이 있으니까. 그리고 운 게 잘못은 아니니까.

2 지난 레터(25화 학습지 선생님과 부랑자와 외할머니)에 독자가 보낸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부모는 좀 곤란할지언정 저희 아기들도 (정우 님의) 셋째 아드님처럼 크면 좋겠어요. 세상엔 이치에 맞지 않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그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부터 싫은 건 싫고,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니까요.

물론 이렇게 생각하지만… 색연필을 사방팔방 칠하려는 아기에게 방금 큰 소리로 한 방에 제압해버렸네요. 어휴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이렇게 큽니다. (박민정)

💬 ‘혼날지언정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신뢰’ 부분이 뇌리에 강하게 꽂힙니다. 저 스스로를 ‘같이 놀아주는 아빠’, ‘아들보다 더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빠’ 정도로 밖에 설명 못하겠는데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아침입니다. (볼봉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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