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며칠 동안 비가 오며 습하거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 날씨가 성큼 다가왔어요. 서서히 여름휴가를 기다리거나 이미 다녀온 분들도 계실 텐데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 중에도 벌써 휴가를 다녀온 멤버가 있더군요. 그것도 저 멀리 유럽으로요. 이번 레터는 아들 셋 아빠 정우 님이 보냅니다.

지난 4월 초, 항공사 하나가 특가 상품을 출시했다. 부모가 표를 사면 자녀는 인원에 관계없이 세금 정도만 내도 되는 상품이었다. 아무래도 항공사가 역병에 지치고 지쳐 자포자기 상태인 부모들에게 그래도 아이들은 챙겨야 하지 않겠냐며 출시한 프로모션 같았다. 이런 프로모션은 본 적이 없다.

일단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5월 말 출발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환불도 가능한 옵션이라 정말 여행을 떠날지는 차차 상황을 보기로 했다.

4월 중순이 되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됐다. 5월 말부터는 입국 전 PCR 검사 외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인정하도록 방역지침이 완화됐다. 성인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면, 이들이 동반한 미성년자의 격리 면제 기준도 만 6살 미만에서 만 12살 미만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큰 아이가 만 7살이라 애매했었는데 걱정도 덜었다. 결제한 비행기표 출발일 며칠 전에야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항공권 결제를 뜨거운 가슴으로 했다면 호텔 예약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한다. 대부분의 호텔은 성인 2명에 아동 1명을 여행의 표준 규모라고 생각하는지, 아동 수를 한 명씩 늘릴 때마다 예약 가능한 호텔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성인 2명에 아동 3명으로 검색하면 펜트하우스나 프레지덴셜 스위트의 객실 유형만 노출되기도 했다.

방을 따로 두 개 예약하자니 그 역시 가격이 펜트하우스에 버금갈 정도였다. ‘설마 이런 방을 예약하지도 않을 거면서 아이 셋을 낳은 건 아니지?’ 호텔 예약 사이트가 이렇게 묻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결국 5명이 한 곳에서 잘 수 있도록 허락해준 자비로운 호텔들 위주로 동선을 짰다.

여행을 간다고 하니 거래처 직원이 본인도 연말에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간다며 잘 다녀와서 어땠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아마 저희 일정은 신혼부부 일정이랑 많이 다를 거예요.”

실제로 우리는 사나흘을 신혼부부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는 동물원을 시작으로 자연사박물관과 이 놀이터, 저 놀이터에서 보냈다. 굳이 이러려고 이렇게 멀리 왔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보내는 휴일의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치 정보를 한국 밖이라고 인식한 아이폰은 사진을 찍을 때 셔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리도 실내든, 실외든 마스크를 쓰지 않는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갔다. 우리가 빌린 폭스바겐 투란(Volkswagen Touran)은 골프 모델을 늘려놓은 형태의 차였다. 일반적으로 뒷자리 시트가 모두 붙어 있는 형태가 아닌 1:1:1 구성으로, 아이 셋을 각자 따로 앉히기에 적합했다. 아이용 부스터 시트 3개도 추가로 빌렸다. 한국에도 대형 승합차 말고 적당한 크기에 아이 셋 친화적인 자동차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만나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조트에서 해 먹을 만한 음식 재료와 간식을 사고자 마트에 들렀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행 중 처음으로 검은 머리 동양인들을 아주 많이 마주쳤다.

“여보, 제주도 온 것 같아.”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커플 한 쌍이 지나가며 말하는 걸 들었다. 반가움보다는 약간의 실망이 느껴진 목소리였다. 역병이 종식되기 전 그 누구보다 호기롭게 비행기표를 결제하고 호텔을 예약했을 사람들이 정작 여행을 와보니 더 이상 이 시대의 선구자가 아님을, 그저 많은 사람 중 하나임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목격한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카트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구색만 간신히 갖춘 장난감 코너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가 셋이다. 아이 셋을 데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왔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어떻게 그럴 생각조차 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주변을 살펴보면 아이가 셋인 집이 종종 있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존재하기는 한다. (정말이에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라는 느낌으로.

허덕일 때도 있고 행복에 겨울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듯. 그래서 내게는 지구 반대편에서 들은 ‘여기가 제주도 같다’는 커플의 지나가는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피식 웃기는 했지만.

남은 일정 대부분은 산 중턱의 리조트에서 보냈다. 날마다 놀이터에 갔고 숲으로 들어가 곤충을 관찰했다. 작은 수영장에 거의 매일 뛰어들었고, 곤돌라를 타고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아쉽게도 컵라면은 먹지 못했다.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했다. 현지에서 받은 신속항원검사 음성확인서와 미리 준비한 Q코드*로 가족 모두 자가격리 없이. 오랜만에 다시 마스크를 쓰고 백반집으로 달려가 김치찌개, 곰탕, 그리고 돈까스 정식을 시켰다. 다섯 가족이 배불리 먹어도 5만 원이 채 안 든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항공기 탑승 전까지 ‘검역정보 사전입력시스템(Q-code)’에 검역정보를 입력하고 QR코드를 발급받으면 대한민국 도착 후 공항 검역대에서 QR코드 스캔만으로 검역절차를 신속하게 마칠 수 있다. (관련 링크)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9화 아빠, 나만 따라와!)에 독자가 보낸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1.

“제가 지금 고민하는 아이의 게임 문제가 나와서 너무 반갑게 읽었습니다. 10살, 8살 남매를 키우는 데 정말 어려운 게 아이들 미디어 환경인 것 같아요. 아이가 원하는 게임은 아직 어렵고, 마인크래프트를 저도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슬기롭고 지혜롭게 해결하고 싶네요!” (두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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