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에게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 이상이었다. 일터이자 식당이자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자 쉼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일을 시작하고, 저녁에는 그 공간에서 다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 이사를 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가족은 한 명 더 늘었고 집은 좁아졌다. 구축 아파트이다 보니 수납 공간도 부족해져 방 하나는 온전히 옷방으로 쓰게 됐다. 이 집에서 일할 공간까지 마련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의 작업 공간을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만의 사무실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 얻은 사무실도 그렇고 이전 집에 서재를 만들었을 때도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책상이었다. 20살에 처음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과 자취방을 전전하던 시절, 제대로 된 책상은커녕 작은 테이블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어도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그때부터, 책상은 내게 '꿈의 아이템'이었다. 넓고 깔끔하며 튼튼한 책상. 책상이 주는 안정감이 내게는 마치 삶의 안정감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같기도 하다. 책상을 놓을 자리가 있는 집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서재를 꾸밀 때 책상을 고르는 일에 신경을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이전 집으로 이사를 들어가면서 완벽하게 나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생겼다. 어떤 책상을 사면 이 공간에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스타트업이 붐을 이루던 때였고, '스타트업 사무실의 상징'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데스커였다. 깔끔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비한 그 책상은 나의 오랜 로망을 실현해주는 존재였다.

흰색 철제 다리와 두꺼운 원목 상판으로 이루어진 데스커의 책상은 나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중심이 되었다. 이 책상 앞에서 나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멤버들을 화상으로 처음 만났고, 3년의 시간동안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써왔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기도 했고,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따금 아이와 아내가 잠든 늦은 밤에는 야식을 주문해 책상 위에 세팅해 두고는 영화 한 편을 보며 긴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책을 읽거나 종이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 책상 앞에서 이루어졌다.

내게 책상은 단순한 가구 이상이다. 책상은 내가 살아가는 흔적을 담아내는 작은 우주다.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 위를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느낀다. 무질서하고 잡다하게 책과 도구들이 쌓여 있을 때에는 곧 결과물을 만들어 낼 거라는 기대감에 차기도 한다. 책상 위 상태는 나의 지금 상태를 고스란히 표현해주는가 하면 내가 만들어가는 과정과 결과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도 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서도 내 책상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종종 내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고는 키보드를 뚝딱거리며 "어디가 아프신가요?"라며 의사 흉내를 내기도 하고, 컴퓨터 대기 화면에 떠 있는 돌고래 동영상을 한참 바라보기도 한다. 돌고래들이 화면 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이 책상은 나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하나의 우주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조만간 사무실에도 한번 데려오려고 하는데 그때는 책상 위에서 무슨 흉내를 낼지 궁금하다.)

내가 이 책상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처럼, 언젠가 아이도 자기만의 책상 앞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사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무렵, 유아용 책걸상을 사준 적이 있었다. '국민템'으로 불리는 유명한 제품이었지만, 아이는 그 책걸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주로 주말에 티비를 보며 밥을 먹는 용도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이서와 이솔이가 성장하며 자기만의 공간과 책상을 원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임을 나는 안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자신만의 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갈지. 공부에 몰입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과 씨름할지, 아니면 동화책과 그림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울지, 혹은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을 살려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어갈지. 아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나는 그 모든 가능성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나에게 그렇듯 아이들에게도 책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며, 가능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을 만들어갈지 상상해보며 나는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것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묵묵히 지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서와 이솔이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든, 그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서와 이솔이의 삶이 ‘가능성의 연속’이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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